[기자회견문]

 

주거권 보장을 위한 용산역 신설보행교 공사구간 내 

텐트촌 주민들의 요구

 

최근 용산역과 드래곤시티호텔을 잇는 신설보행교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미 작년부터 신설보행교가 건설될 예정이라는 보도가 잇따랐고 용산구청장이 참석한 착공식이 열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터전 삼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관해 여전히 알지 못하고 있다. 이곳 텐트촌에서 1년, 10년, 20년을 살아왔지만, 우리의 삶과 직결된 중요한 의사결정의 과정에서 우리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지금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거의 없다는 것뿐이다.

우리는 현재의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서로의 경험과 의견을 나누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주거권 침해 상황을 더욱 악화할 뿐인 ‘주어진 선택지’를 거부하고, 우리의 주거권 보장을 위해 용산구청에 다음과 같이 요구하기로 뜻을 모았다.

첫째, 적절한 주거대안 없이 이뤄진 퇴거예고를 즉시 중단하도록 조치하라. 거처를 옮겨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된 시점이 불과 보름 전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15일 전까지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길 것을 종용받고 있다. 짧게는 1년, 길게는 20년을 현재의 거처에서 살아왔다. 거처를 옮기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더욱 열악한 거처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상황에선 더더욱 그러하다. 적절한 주거대안이 제시되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의 거처를 옮길 수 없다.

둘째, 민간 시행사와 시공사가 아닌 용산구청이 직접 나서서 주거 및 이주대책을 마련하라. 약 보름 동안 우리의 일상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공사구간에 해당하는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조차 알기 어려웠다. 모든 것은 구두로 전달됐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슨 협의가 어떻게 가능한지조차 알 수 없었다. 우리의 주거권을 보장할 책무가 있는 주체는 민간이 아닌 공공이다. 공사 시행을 위한 대책만을 늘어놓는 민간 시행사와 시공사가 아닌, 구청과 대화하기를 우리는 원한다. 구청이 직접 나서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적정 주거 보장을 위한 대책을 제시할 것을 요구한다.

셋째, 공사 완료 후 모든 텐트촌 동료 주민들의 거주 안전성 보장을 약속하라. ‘공중보행교 설치 협약서’가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리고 그 협약서 내용에 따라 신설보행교 설치 후 유지보수를 민간기업이 맡게 된다는 사실도 들었다. 우리는 2017년말 호텔 개장과 동시에 현 공중보행교에서 쫓겨난 우리의 동료들을 여전히 기억한다. 우리는 공공장소의 관리운영의 주체가 바뀌는 순간, 그 장소에서 가장 먼저 쫓겨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우리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우리의 주거 및 이주대책과 별개로, 우리의 동료 주민들이 공사 완료 후 어떠한 퇴거위협 없이 현 거처에서 머물 수 있도록 조치하라. 

 

2022. 4. 12. / 용산역 신설보행교 공사구간 내 텐트촌 주민

 

원문 : https://docs.google.com/document/d/1YVN5NgGt6_QLXADTastOZJk9ReUbKoQhfCerKyKx5n0/e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