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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빈곤 이슈페이퍼] 기후위기 시대, 에너지빈곤 해결은 주거권과 만나야한다

 

2023.02.21 빈곤사회연대 

 


 

 

 

새해와 함께 난방비 급등으로 여론이 고조되었다. 정부와 정치권은 에너지바우처 확대나 전 국민 난방비지원금 같은 여론 달래기용 보조금 지급안을 주로 내놓았다. 추위가 사그라들며 난방비 대란도 언뜻 잠잠해지는 듯 보인다. 그러나 기후위기 시대 예측 불가능한 재난이 일상으로 변해가는 지금, 임시적 금전 보조를 넘어 근본적인 에너지 대책을 고민할 때다.

 

 

 

 

에너지바우처를 반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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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7일 <난방비 말고, 내놔라 공공임대! :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 계획 발표 2, 신속한 사업 추진 촉구 기자회견> (사진=빈곤사회연대)

 

 

에너지바우처를 반납합니다. 약속한 공공임대주택을 빨리 짓는 것이 쪽방촌의 재난을 해결하는 길입니다

 

 

지난 27, 전국 최대규모 쪽방촌인 동자동 쪽방 주민들은 에너지바우처를 반납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었다. 필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에너지바우처를 통해 당장의 요금부담은 덜더라도, 요금보조나 감면이 해결하는 기후재난의 위기란 너무나 한계적이란 것을 주민들은 열악한 쪽방의 삶을 통해 인식하기 때문이다.

 

20212, 국토부와 서울시는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을 발표했다. 주민을 위한 임시 이주 단지를 우선 조성하고, 주민이 다시 재정착하는 공공개발을 하는 계획이다. 발표대로라면 2021년 지구지정을 마치고, 2023년인 현재는 착공에 들어갔어야 하지만 2년을 넘긴 지금까지 첫 단계인 지구지정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민간개발을 주장하는 소유주 측의 의견을 검토한다는 명분으로 정부는 사업을 지체하고 있다. 최근 많은 언론에서 난방비 대란 사례로 동자동 쪽방촌을 언급한다. 수도관이 터져 얼음으로 뒤덮인 계단을 찍기 위해 언론은 동자동 건물 앞에 진을 치기도 했다. 기후위기 속 집답지 못한 집은 그 자체로 재난이다. 냉난방비 보조로 해결될 수준은 넘어 선지 오래다. 공공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적정 주거로 변하는 것만이 근본 대책이라고 주민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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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동 주민이 건물주로부터 받은 자료. 이 건물의 입주민들은 한 개의 계량기를 네 가구(4)가 사용한다. 지난해 12, 건물주는 전기요금 68만 원에 대해 가구당 15만 원의 요금을 청구했다. 앞으로도 오를 전기요금에 부담을 느낀 주민들이 옆 쪽방으로 이사하기로 하자, 건물주는 전기요금을 할인해 가구당 10만 원씩만 부담하도록 했다. 이사는 철회했지만, 계량기를 공유하는 탓에 다른 가구의 부담까지 염려되는 주민들은 전기장판도 쓰지 못하는 냉골에서 지내고 있다. (사진=2023홈리스주거팀)

 

 

 

 

정의부터 모호한 에너지빈곤

 

통상 에너지복지제도 대상은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으로 간주 되나 실상은 다소 다르다. 우선 에너지법에서 정하는 에너지이용 소외계층저소득층 등 에너지 이용에서 소외되기 쉬운 계층으로 매우 추상적이다. 대표적인 에너지 복지인 에너지바우처는 기초생활수급자 중에서도 노인, 영유아, 장애인 등의 특성을 더불어 충족해야 한다. 또한 기초생활수급자 중에서도 주거·교육 급여 수급자는 2023년 에너지바우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실제 에너지빈곤 상태에 놓여도 지원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많다.

 

이처럼 복지대상이 들쭉날쭉한 까닭은 에너지빈곤층을 가늠하는 지표 자체가 가진 한계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는 에너지빈곤 계측 방식으로 가구 소득의 10% 이상을 광열비로 지출하는 가구로 정의하는 TPR 지표를 따른다. 이 지표는 소득대비 지출만 따지는 만큼 고소득·에너지 과지출 가구가 에너지빈곤 가구로 포함되고, 역으로 비용 부담 탓에 에너지 소비를 비정상적으로 줄이는 가구는 비 가시화되는 한계가 있다. 한편 EU의 에너지 빈곤관측소는 적정 온도를 유지할 능력이 있는지, 공과금 체납 경험이 있는지 같은 당사자의 경험을 질의해 반영하거나 주거 점유형태, 빈곤이나 건강 위험 등을 보조 지표로 활용해 에너지빈곤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종합적으로 살피고 정의한다. 앞선 지표들을 바탕으로 한국적 맥락에 맞게 보완해 실제 에너지 빈곤층이 누구인가에 대한 정의부터 세우는 것이 향후 필요한 과제다.
 

 

 

 

에너지 복지의 내용 및 한계 정부 대책에 대한 진단

 

가파른 난방비 인상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정부는 대통령실을 통해 기존 에너지바우처와 에너지요금할인 금액을 2배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21일 산업통상자원부 보도자료를 통한 동절기 차상위계층 등 서민을 위한 추가 난방비 지원 대책이 그것인데,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 및 차상위계층에 최대 592천 원의 난방비를 지원하고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개선해 신청 누락을 최소화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어 221일 정부는 보건복지부 보도자료를 통해 긴급복지 연료비 인상으로 동절기 위기가구 지원 강화추가 대책을 발표했다. 긴급복지지원제도 연료비 지원 금액을 기존 11만 원에서 15만 원으로 인상한다는 내용이다. 긴급복지지원제도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위기상황 예방 및 대응을 지원하는 제도인데, 집행률이 높고 매년 예산이 부족해 추경을 반복하는 제도다. 그러나 2023년 기준 예산 총액은 약 3천억에 불과하다. 긴급복지지원제도 신청을 위해서는 위기 상황에 더불어 소득, 재산 자격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주 소득자의 실직 또는 사망, ·폐업, 중한 질병이나 수술 등과 같은 위기 사유를 충족하고, 낮은 소득(기준중위소득 75%)과 재산 기준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등, 경직된 선정기준 탓에 실제 위기상황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내놓는 대책들에 대해 우선, 증액 수준이 충분한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추가 난방비 지원 대책을 통해 1인 가구가 지원받을 수 있는 에너지바우처 최대 금액은 277천 원이다. 일시적 증액분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여름과 겨울 최대 1년에 걸쳐 나누어 사용하기에 급등한 난방비에 비추어 충분치 않은 수준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에너지바우처 예산은 작년 2305(추경)에서 올해 1909억으로 400억 가량 삭감되었다. 난방비 대란은 지난해부터 예상 가능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예산편성은 쉽게 납득이 어렵다.

 

다음으로 사회보장정보시스템 개선이란 알쏭달쏭한 말로 퉁 쳐지는 계획들을 뜯어 볼 필요가 있다. 달리 말하자면 사각지대를 더욱 열심히 발굴하겠다는 계획일 것이다. 그러나 보수적인 선정기준의 개선 없이 진행되는 발굴과 홍보는, 실제 복지제도가 필요한 이들이 동주민센터를 찾아도 다시 발걸음을 돌리게만 할 것이다. 이는 복지제도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복지확대를 지연시켜 온 경험적 사실이기도 하다. 보여주기식 금액 인상이 아니라 실제 다양한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이 제도를 이용할 수 있게 선정기준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

 

나아가 에너지바우처의 도움 없이 기초생활보장제도 그 자체로 에너지요금이 일상적으로, 모자람 없이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생계급여는 연료비를 포함해 일상에 필요한 금품을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생계급여에 합당한 연료비가 포함되어 있다고 판단하기 힘들다. 연료비는 주택의 품질과 가구특성에 따라 지출의 폭이 크게 좌우되는 만큼 주거안정에 필수적인 요소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기초생활보장제도 급여에 합당한 연료비를 반영해야 한다.

 

 

 

 

에너지 빈곤은 주거의 문제

 

에너지복지 사업 중에는 낡은 집을 수선해 에너지비용을 절감토록 하는 에너지효율개선사업이 있다. 기초생활수급가구, 차상위계층 가운데 특히 민간주택의 임차가구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한국의 불균형한 임대차 계약의 권력 구조 상, ‘집주인의 동의를 우선 구해야 하는 것이 첫 번 째 걸림돌로 작용하고는 한다. 또한 사업 이후 개선을 이유로 임대료가 상승하거나, 오른 주거비로 퇴거 위험에 처하는 것에 대한 제동장치가 부재하다. 점유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아울러 해당 사업에서 자가소유 가구는 제외되며 공공임대주택거주자 또한 제외된다. 정부의 입장으로는 공공임대주택 거주자는 이미 주택 지원을 받기 때문에 중복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보일러가 오래되어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거나 에어컨이 없더라도 냉/난방기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주거안정이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의 제공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는 점에서 공공임대주택에도 에어컨 설치 등 에너지효율개선사업이 필요한 경우 추가 지원을 해야 한다.

 

그 외 에너지빈곤층이 이용할 수 있는 집수리 지원으로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선유지급여가 있다. 자가를 가진 주거급여 수급가구가 그 대상인데, 수급자 가운데 자가를 가진 숫자 자체가 적기도 하고, 자가라고 해도 주택 상태가 그리 양호하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이다. 집 상태에 따라 지원금액이 다르고 기간도 정해져 있다. 400만 원 정도를 지원받아 창틀을 교체하고 나면 또 3년을 기다려야 다른 창틀을 교체할 수 있는 식인데, 그러다 보니 수선과 수선 사이에 집이 더 낡아서 기존의 수선이 쓸모없어지기도 한다. 또한 아주 열악한 집의 경우 비용대비 효과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수선유지급여 대상에서 제외된다. 대상이 돼도 적정 주거기준에 도달할 때 까지 지원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금액과 기간의 제약 안에서 진행되다 보니 한계가 상당하다.

 

 

 

 

 

재난 앞에 흉기가 되는

 

기후위기 속 폭염, 폭우, 한파 앞에 열악한 주거는 그 자체가 재난의 조건이 되고 있다. 한국도시연구소의 인구주택총조사(2020) 원자료 분석 결과에 따르면, 쪽방, 고시원과 같은 비주택 거주 가구는 45만이다. 여기에 옥상, 지하 거주 가구와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를 더하면 주거빈곤가구는 176만에 달한다.

 

: 2018년 가을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로 입주민 일곱 명이 사망했다. 네 명은 기초생활수급자, 세 명은 일용직 노동자였다. 불은 한 입주민의 히터에서 시작되었고, 고시원의 유일한 출입구 앞이라 더욱 큰 피해를 낳았다. 4만 원 더 저렴한 창문이 없는 방에 피해가 집중됐다. 쪽방과 고시원 등 다중이용시설은 중앙난방시설이 아예 없거나 미비한 경우가 많아 이처럼 자구적인 방법으로 냉/난방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위험하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으며, 자구책에도 불구하고 적절하지 못한 온도로 혹한과 혹서를 난다.

 

: 수리를 해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집이 있다. 대구 지역 한 쪽방에서 진행된 에너지효율개선사업이 그 예다. 적산가옥을 개조해 만든 해당 쪽방은 사업을 통해 벽면에 8cm 두께의 단열재를 보강했다. 해당 입주민에게 사업효과를 질문하자 방이 좁아졌습니다라는 대답이 가장 먼저 돌아왔다. 단열효과는 높아졌지만 사실상 주거의 질이 나아졌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최예륜(2020). "에너지 빈곤의 현실과 에너지 복지 현황 - 빈곤가구 심층면접조사를 중심으로", 사회공공연구원 워킹페이퍼 2020-05.

 

: 2022년 서울시는 쪽방 주민 폭염대책의 일환으로 민간 후원을 활용해 에어컨 150대를 설치했다. 먼저 적은 수가 문제였다. 150은 서울지역 쪽방 건물의 절반도 채 안 되는 숫자다. 따라서 각 호실이 아닌 층별마다 한 대의 에어컨을 설치하며 극히 제한적인 효과만 낳았다. 냉기를 느끼기 위해선 방문을 항상 열어두며 사생활을 드러내야 했다. 열린 문 때문에 쪽방 복도는 통행이 어려웠다. 더 많은 에어컨이 지원됐으면 해결될 문제였을까. 그러나 서울지역 쪽방 건물 중 목조건물은 43.2%(2021년 서울시 실태조사)에 달한다. 각 방을 나무합판으로 쪼개놓은 경우가 많아 벽걸이 에어컨을 버틸 재간이 없다. 에어컨 리모콘을 관리인이 가지고 있어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의 사용을 못 하는 상황도 다수 발생했다. 소규모 수선이나 용품 지원으로는 손 쓸 수 없는 건물 자체의 문제를 살펴볼 수 있다.

 

: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은 20222~4월에 걸쳐 국민기초생활 수급가구 가계부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대상이 적기에 통계적인 대표성을 가지긴 어려우나 일종의 경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조사를 바탕으로 내린 결론은 광열비 지출만으로는 에너지 빈곤 여부를 측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참여가구의 월평균 광열비는 26천원 수준으로 파악됐다. 이는 20221/4분기 가계동향조사 연료비 154,000원과 비교해 큰 차이를 보인다. 앞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소득대비 10% 이상을 에너지비용으로 지출하는 경우 에너지빈곤층으로 정의되는데, 조사가구는 1인기준 58만원의 수급비를 소득으로 봤을 때 10%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광열비를 지출하고 있었다. 에너지빈곤가구로 추산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조사 가구는 식비나 의료비 같은 필수 지출 때문에, 필요에도 불구하고 에너지비용 지출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었다. 한겨울에도 아주 짧은 시간만 난방을 하거나, 에어컨이 있어도 이용하지 않거나, 두꺼운 양말을 두 개씩 신고 지냈다. 한 참여자는 장애 특성상 실내 온도가 낮으면 욕창 발생 우려가 있어 다른 소비를 줄이고 에너지비용을 지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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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혹한기 홈리스에 대한 긴급구제 요청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있다 (사진=홈리스행동)

 

 

: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 몇 해, 동절기에 한해 운영되던 노숙인 응급대피소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응급대피소는 집단 밀집시설로 코로나19 감염 예방책과 상반됐기에 독립적 주거 지원의 필요가 대두됐지만 거리홈리스를 대상으로 한 임시주거지원 예산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2021년 서울시 노원구에서는 호텔을 임대해 1인 한파 쉼터를 제공했지만, 대상을 독거노인으로 한정하고 물량이 30호에 불과했다. 2020년 여름 서울시는 혹서기 대책으로 지역 내 숙박시설을 활용해 안전숙소를 제공했지만, 물량이 부족하고 “60세 이상의 홀몸, 고령 부부 등주거특성의 고려 없이 인구학적 기준으로 대상을 설정하여 실제 필요에 부응하지 못했다. 홈리스를 비롯한 비적정거처 거주자에게 지역 내 숙박시설을 활용한 안전숙소를 제공해 혹한/혹서기 피해를 예방할 필요가 있다.

 

 

 

 

 

나가며 : 기후위기시대, 에너지 기본권과 주거권 보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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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요 언론에서 동자동 얼음계단으로 보도된 동자동 쪽방의 화장실. 수도관 동파로 화장실과 계단이 얼음으로 뒤덮였다. 해당 건물주는 작년 재래식 변기에서 양변기로 교체하며 모든 주민의 임대료를 만 원씩 인상했다. 에너지 위기 대책으로 논의되는 주택품질 개선이 주민의 주거비 부담으로 전가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진=홈리스행동)

 

 

에너지 접근이 생존의 문제가 되고 있다. 에너지는 필수재로써, 적정한 가격으로 제공될 필요가 있다. 요금인상으로 필수재에 대한 접근마저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 에너지빈곤 문제는 몇 가지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해 현재의 지나치게 협소한 에너지 감면, 바우처제도 등은 적절한 방식과 수준으로 개선 및 확대 될 필요가 있다.

 

또한 무엇보다 강조할 점은 에너지빈곤은 주거빈곤의 한 형태라는 점이다. 향후 지속될 에너지 위기 속 에너지비용 보조만 답이 될 순 없다. 에너지빈곤 해소를 위해서는 비주택 거주가구 주거환경의 획기적 개선, 적정 주거로의 신속한 주거상향 지원을 비롯한 주거불평등 해소가 시급하다. 단열효과가 떨어지는 낡은 집, 불평등한 임대차 지위, 불안정한 점유형태, 구매력에 따라 결정지어지는 주거의 질이라는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 또한 함께 고려해야 마땅하다. 비적정주거 및 노후주택은 임대료가 저렴하고 상대적으로 장기거주가 가능해 공식 주택시장에서 빈곤 가구의 최선의 선택지가 되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주택의 리모델링이 임대료 인상 및 퇴거로 이어지는 생태적 젠트리피케이션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관련해 독일 베를린의 사례를 주목해보자. 베를린시는 임대료 통제 장치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10년간 급격한 임대료 폭등을 마주했다. 단열 등 난방시설을 리모델링하는 경우 인상율 상한제나 비교기준임대료의 적용을 받지 않도록 규제 예외 장치를 두면서부터다. 임대사업자들은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명분 아래 낡은 임대주택을 리모델링하며 매년 11%까지 임대료를 올렸다. 10년간 임대료는 2배로 올랐고, 이는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폭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었다. 이로인해 소득의 30% 이상을 임대료로 지출하는 주거빈곤층이 크게 증가했다.

 

한국의 경우, 1회 갱신권과 신규임대차에 대한 임대료 인상률 상한제가 미적용되는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으로는 주택개량으로 인한 임대료 상승 및 퇴거를 예방하기 어렵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서울시가 진행한 영등포 쪽방촌 리모델링지원사업 시에 5년간 임대료 동결 협약을 맺고 수리를 지원하기도 했으나, 협약만으로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거나 기존에 없던 관리비를 부과하기도 해 퇴거가 발생하기도 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을 통한 갱신권 강화 및 신규임대차 규제 도입이 필요하다. 혹은 주택개량 지원시 임대주택으로 등록하게 하고, 등록임대주택에 대한 세입자 권리 규정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주택에 대한 상품화와 소유를 정점으로 하는 공급중심의 주택정책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주택부문의 대응은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권을 위협할 우려가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이 주택 성능의 기술적 개선이 아닌 주거권과 만나야 하는 이유이다.

 

공공임대주택의 공급확대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주거상향 정책이다. 특히 저소득빈곤 가구의 특성상 생활권을 벗어나기 어렵다. 생활반경 안에 있는 기존주택을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것은, 저소득층 주거권 보장과 기후위기에 대응한 주택공급 방안이기도 하다. 주택에 대한 공공선매권제1 도입과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지자체별 쿼터제2 도입 등 보다 적극적인 정책으로 기존주택을 공공임대주택으로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에너지 위기의 해법을 말할 때 단기적 대책으로 에너지바우처, 장기적 대책으로 공공임대주택 확충이나 그린리모델링을 추진할 것이 이야기된다. 작은 우려가 있다면, 집에 대한 문제가 장기적인 전망으로 논해지며 생겨나는 착시에 대한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해 모두에게 집다운 집을 보장하는 것, 공공임대주택을 확충하는 것이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공공임대주택 확충을 지체없이 시작해야 한다. 불평등한 주거권 자체가 시급한 위기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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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1_반빈곤이슈페이퍼_기후위기시대에너지빈곤해결은주거권과만나야한다_빈곤사회연대.pdf

 

 


1) 공공선매권제도는 독일과 프랑스 민법에서 인정하고 있는 권리로서, 주택 매각 시 1차로 시정부가 우선매입권을 갖는 제도이다. 시정부가 매입을 포기하기 전에 주택소유자는 다른 개인에게 주택을 팔 수 없다. 프랑스 파리시는 도시계획을 통해 사회주택 후보지를 선정해 선매권을 사용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시는 사회적보존령도입으로 선매권을 활용해 사회주택을 확보하고 있다.

 

2) 서울의 경우 자치구별 공공임대주택 비율 불균형이 심하고, 저소득층이 밀집한 도심권 내의 공공임대주택이 부족하다. 공공임대주택 쿼터제는, 기초지자체별 공공임대주택 의무 공급 비율을 설정해, 일정 기간 동안 도달을 위한 계획과 정책을 시행하는 방식이다. 프랑스는 2025년까지 일정규모 이상 기초지자체(꼬뮨)는 사회주택 25% 확보 의무화 법을 도입했고, 파리시는 도시계획으로 사회주택 부족 지역을 지정해 30% 사회주택 건설을 의무화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