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빈곤 희망의 연대



2008 여름빈곤철폐현장활동 “숨은 빈곤 찾기”를 마치며


최예륜(빈활기획단)  / 2008년07월16일 13시17분





빈곤과 불평등의 시대, 우리의 삶의 현실을 고발한다


이른바 실용노선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고 부를 재창출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이명박 정부가 궁지에 몰려 있다. 애초에 약속한 747
경제성장은 전 세계적인 고유가 행진과 장기불황 속에서 이미 지킬 수 없는 약속임을 스스로 선언하였고,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는
대다수 민중들의 삶을 거대한 불만과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촉발된 촛불집회는 정부가 형성하는 공안정국 속에 잠시 수그러든 것 같지만 두 달 여 지속된 촛불에서
발견된 숱한 쟁점들은 여전히 생생히 살아있다. 2008 여름 빈곤철폐현장활동은 우리가 처한 삶의 위기 상황에서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발언하고 무엇에 저항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는 ‘국민생명 위협하는’ 반민주세력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저항을 우리 삶의 제반 영역에서 구체화하고 일상화하고자 한 시도라 할
것이다. (주로) 도시에서 살아가고 노동하고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의 삶과 일상이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에 대한 잔잔한
폭로인 셈이다.


아픔


우리는 가옥주와 토지소유주의 개발경쟁에서 갈 곳 없이 내몰리는 처지에 몰린 상도 4동 세입자 철대위를 만났다. 마을버스에서 내려서도
10분을 돌, 흙 계단을 올라야 닿을 수 있는 작은 언덕배기를 올라 재래식화장실 향기와 습기가 가득한 숙소에서 주민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제발 우리 이대로만 살게 해달라”는 넋두리를 나누었다. 부천시의 개발정책에 의해 상가와 주거를 모두 잃게 될 처지에 놓인 약대동 철대위
주민을 만났고, 최저주거기준에도 미달하는 비닐하우스 마을에서 살면서 주소지를 인정하고 임대아파트 입주권 말고는 더는 바라는 게 없는
잔디마을 주민을 만났다.


우리는 마땅한 일자리도 변변한 사업자금도 없이 거리에서 장사하는 일을 생업으로 택한 노점상 회원들을 만났다. 용역깡패를 동원해 노점상을
몰아낸 자리에 디자인 서울을 만들겠다는 폐 컨테이너 박스를 가져다놓는 관악구청의 무지막지함에 분노하고, 지나치는 사람들의 썰렁한
시선에도 묵묵히 강남역에 천막을 치고 앉아 “제발 우리 이대로만 살게 해달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동지들과 함께 했다.


우리는 자신의 종교와는 무관하게 교회 예배를 들으며 한 시간을 서서 기다려 밥 한 끼를 급식 받는 노숙인들과 밥 한 끼를 나누었다. 차마 구구한
사연들을 물을 수 없어 짜디짠 미역냉국을 말 없이 후루룩 마시고 기초생활수급을 받거나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면서 쪽방 임대료를 다달이
지불하며 개발사업에 의해 언제 주거지를 잃어도 아무런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쪽방 주민들의 일상에 잠시 침입했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우리의 문제를 알려 달라”라는 주문을 해왔다. 가난한 삶의 지긋지긋함도골병 든 몸의 피로도 잊고 당신들의 현실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 삶의 자리에 침입한 ‘침입자’들에 모든 마음을 열고 두런두런 얘기하고 식사와 술을 나누었다.


분노


감히 누가 아픔이라 말하랴. 몇 십 년을 이어온 일상을, 삶 자체를. 빈곤층 인구는 정부 추계로도 1천만 명에 육박한다. 정부와 기업가들은 일을
통해 빈곤을 탈출할 것, 경제성장이 모두를 구원할 것이라고 되풀이하지만 소득 하위 20%와 상위 20%의 소득격차는 무려 8.5배에 달한다.
주택보급률은 100%가 넘어도 자기 집 한 칸 가지지 못한 사람이 전체 인구의 절반에 달하고 집 부자 상위 10위는 1천 채가 넘는 집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IMF 외환위기라는 긴 터널을 지난 후 우리에게 남은 것은 비정규직 60%,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 200만, 금융피해자 700만.
 이런 암담한 수치들이다.


대선을 앞두고 다양한 민생해결을 둘러싼 정치세력들의 담론과 정책은 난무했지만 실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없었고, 그들의
말 속에 빈민 당사자의 요구는 담겨 있지 않았다. 이제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외쳐야 할 것이다. 빈곤의 현실 속에서 숨죽이며
저임금노동자로 살아가거나, 쥐꼬리만 한 수급액으로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가거나, 미친 개발 정책으로 변두리로 내몰리는 사람들. 이제 더 이상
이렇게 사라지는 빈민, 거리에서 죽어가는 빈민의 현실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빈활을 통해 우리는 투쟁과 희망의 연대를 약속했다.


투쟁


‘경제문화도시마케팅 프로젝트’, ‘디자인 서울’이라는 명분으로 무차별적이고 폭력적으로 자행되는 서울시의 빈민탄압을 규탄하고, 성장주의와
개발주의로 점점 살기 어려워지는 도시를 누구나 평등하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로 바꿔나가기 위한 우리의 힘과 지혜를 모으고자
고민하였다. 지난 7월 1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진행된 “오세훈 서울시장 창의시정 2주년 규탄! 서울시 개발정책 규탄! 사회 공공성 강화를 위한
결의대회”는 그러한 투쟁의 시작인 셈이었다.


지역사회의 철거민, 노점상, 노숙인의 현실을 알리고 관련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폭로하기 위한 선전활동을 전개하였다. 빈민 당사자가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시혜적인 도움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의 권리 실현을 위한 연대와 저항이라는 것을 다시금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빈활 참가단의 적극적인 선전활동은 7박 8일 빈활 기간 동안 가장 빛나는 투쟁의 과정이었다.


연대


빈민해방철거민연합, 전국철거민연합, 주거권실현을 위한 비닐하우스주민연합 등의 빈민당사자 조직들이 모여 이명박 정부와 서울시의
막가파 개발정책에 맞서 주거권을 함께 외쳤다. 시설비리에 맞서 싸우며 장애인의 자립생활의 권리를 위해 탈시설운동을 펼치는 석암비대위
시설생활인들과 지역사회의 일원인 세입자 주민, 빈활참가단의 만남은 서로의 열악한 현실에 눈물짓는 감상을 넘어 함께할 투쟁의 과제를
이해하고 연대를 모색하는 소중한 고민의 시간이었다.


서로의 처지와 조건의 차이에 따른 이해의 부족과 도시빈민 내부에서조차 서로를 차별화하는 시선을 거두고 1% 부자만을 위한 경제, 노동정책과
개발광풍에 맞서 함께 연대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하였다.


‘숨은 빈곤 찾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턱없이 낮은 빈곤선이 한국사회의 빈곤을 은폐, 축소하고 있고 죽지 않을 정도의 생계비 지원으로 수급자를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가고 있다.
최저생계비의 현실화! 상대적 빈곤선 도입을 위해 우리의 생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 우리 삶의 권리에 대한 요구가 무엇인지 모아나가야
한다.


급기야 이번 서울시의회에서는 서울시내 개발규제를 대폭 완화할 수 있는 조례개정을 통과시켜버렸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하이서울페스티발,
디자인올림픽 등을 추진한다며 (도시빈민의 삶의 공간을) ‘비우는 디자인’을 기획하며 미친 개발의 바람을 부추기고 있다. 삶의 권리로서의
주거권과 더 이상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고 쫓겨나지 않을 권리를 전면화해야 한다. 가진 자들만을 위한 개발이 어떻게 빈곤을 확대하고 있는지
낱낱이 파헤치고 개발의 환상을 걷어치워야 한다.


정부의 사회양극화 해소, 사회통합이라는 담론 속에서 사회서비스를 확충하고 일자리를 만들어주겠다는 그럴싸한 말로 포장된 복지의 시장화,
저임금비정규직 대거 양산 정책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일자리와 복지를 연계시켜 노동의 위기 삶의 위기를 가중시키는 정부의 사회서비스
정책과 능동적 복지 정책에 맞서 삶의 권리로서의 복지를 주장해야 한다.


연대는 공동집회와 토론회 개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빈곤철폐현장활동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가르침은 연대란 상대의 삶과 노동의
문제에 얼마나 깊이 침투하느냐 하는 삶의 공유이자 일상 그 자체라는 점이었다. 우리의 빈활은 일상으로 지역으로, 서로의 삶의 권리를 함께
이야기하는 가운데 더 깊고 넓게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숨은 빈곤 찾기는 계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