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옥란 열사의 죽음,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의 기본생활보장을 위한 과제

  최예륜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김대중 정권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구걸을 하더라도 치사해서 수급권을 못 받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국무총리에게 26만원을 반납하러 갑니다.”

  뇌성마비 1급 중증여성장애인 최옥란 열사가 기초생활 수급권 반납투쟁을 벌이며 했던 말이다. 사실상 유언이 되어버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정말로 저같이 가난한 사람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로 거듭나기를 희망합니다"라던 열사의 말은 IMF 외환위기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당시 정부의 생산적 복지의 허구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열사의 죽음 8년이 지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 지 10년이 된 지금, 달라진 게 거의 없는 현실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가난한 이들과 중증장애인의 기본생활보장의 요구와 투쟁 과제가 무엇인지 다시금 뼈저리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수급을 받기 위해서 ‘노동’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

  청계천에서 노점상을 하던 최옥란 열사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되면서 수급자가 되었다. 노점에서 버는 소득으로 수급권 탈락의 위기가 발생하자 영구임대아파트에 살기 위해, 또한 의료비 지원을 받기 위해 노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2001년 당시 수급자가 되기 위한 소득의 기준선은 33만원이었고, 이를 초과하면 수급을 받을 수 없어, 의료비를 전혀 지원 받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을 하지만 가난한 이들이 기초생활보장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기존의 생활보호제도에서 개선되어야 노동유무, 연령에 상관없이 누구나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이면 지원받을 수 있다는 규정을 스스로 위반하는 것이다. 실제로 근로소득이 아닌 추정된 소득을 부과함으로써 소득자격기준을 박탈하거나, 생계비를 제하는 방식인 추정소득부과방식 때문이다. 따라서, 여타의 복지서비스 지원을 받기 위해 노동을 포기하도록 만들고 더욱 가난의 틀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 수급권자의 현실이다. 하지만 수급자의 범주 내로 들어오면 그 안에서 또 근로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르게 되고,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정되면 적정한 지원체계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자활전망이 부족한 자활사업에 참여하게 된다. 이것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안고 있는 중대한 문제점이다. 빈곤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급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빈곤의 감옥에 갇히는 것

  최옥란 열사가 수급자가 된 후 한 달에 지급받은 급여는 고작 26만원으로 의료비 26만원(의료급여 1종임에도 본인부담금이 많았다)과 영구임대아파트 임대료 16만원을 감당할 수조차 없는 수준이었다.(여기에 장애수당 4만 5천원과 주거급여 2만 3천원을 더한다 해도) 결국 빚이 쌓여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누군들 빈곤을 벗어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소득이 최저생계비 기준선을 초과하는 순간 수급권 박탈과 동시에 주거, 의료 등 복지지원의 사각지대에 던져지게 되는 현실에서, 빈곤을 벗어날 수도 없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할 수조차 없게 하는 감옥 아닌 감옥에 갇혀 버리는 것이 수급자의 현실이다. 열사는 이러한 문제가 개인을 넘어선 모든 장애인 수급자 및 가구특성에 따라 추가비용이 발생하는 수급자들이 겪는 현실임을 폭로하고, 불합리한 기초법의 개선을 요구하며 농성에 참여하였다.

  또한, 최옥란 열사는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이혼 후 양육권을 요구하였으나, 장애가 있고 수급자이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깊은 좌절을 경험했다. 양육권 소송을 준비하기 위해 주변 지인들로부터 돈을 빌려 통장에 일정액을 넣어두었지만, 그것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재산기준(당시, 3천3백만원)을 초과하는 수준이 되면 수급권이 박탈되는 상황에 처했고, 수급권 재심사 통지가 동사무소로부터 날아드는 순간, 열사는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절망 속에서 죽음을 택한 것이다. 이 땅의 가난한 중증장애인 여성으로서, 불합리한 제도와 차별의 벽에 부딪힌 열사의 죽음은 이 땅 가난한 이들의 삶의 권리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현실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보다 많은 최옥란이 모여 함께 하는 기초생활권리행동에 나서자

  2009년 기초생활 수급자의 ‘근로능력’을 의사 진단서를 통해 판단토록 했던 복지부의 지침과 이에 따른 용산구청의 수급권자 무더기 강제전환 사건에 대응하며 <기초생활권리행동>이 구성되었다. <기초생활권리행동>은 현재 사회보장을 필요로 하는 수급(권)자들이 어떠한 상황에서 처해있고 무엇을 요구하는지 밝히고자 한다. 이들이 처한 조건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질병, 장애, 실직 등으로 빈곤에 처한 상황에서 이 사회가 요구하는 강도 높은 노동과 낮은 임금으로 빈곤을 탈출할 수 없었던 상황을 겪은 이래, 사회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둘째, 수급(권)자들은 낮은 학력과 사회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관계망과 노동을 통한 삶의 희망을 실현할 가능성을 찾고 있다. 이들이 바로 자신들의 삶을 옥죄고 있는 사회적 환경을 개선해나갈 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 주체다. 셋째,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보장하는 소득과 지원체계를 통해서는 인간다운 삶은커녕 점점 더 빈곤의 수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이들 모두가 인격과 권리를 가진 인간이자 시민이라는 점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빈곤한 국민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지원체계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빈곤선 이하에 처한 수급권자의 권리에 기초한 제도 운영이 필요하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부정수급률이 높아졌다는 것을 근거로 수급자격을 까다롭게 하며 수급권자를 걸러내기에 바쁘고, 이는 일선 행정 과정에서 수급권자를 옥죄는 근거로 기능하고 있다. 지난 4월 6일 국가인권위에서 진행된 근로능력평가기준 토론회에 참석한 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 관계자는 제도의 ‘적정 관리시스템’이 필요하며, 그런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을 경우 모든 수급자가 부정수급자로 오해받을 것이라 주장하였다. 하지만 ‘기초생활권리행동’이 기초법 개정 청원을 위해서명운동을 전개하는 동안 만난 수급자와 서명 참여자들은 하나같이 제도의 문제점이 오히려 빈곤을 고착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빈곤의 원인과 가난한 이들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기초생활권리행동은 1>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소득, 재산 기준 개선 등으로 사각지대를 해소할 것 2> 상대빈곤선 도입으로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할 것 3> 조건부수급조항을 폐지하고 실질적인 자활 대책을 수립할 것 4> 수급권자 권리 보장 강화와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개선 5> 빈곤실태조사 실시, 국민기초생활보장계획을 수립하고 전액 국비 보장할 것 6> 의료, 자활, 교육, 주거 등 개별 급여의 확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기초법 개정 청원 요구안을 작성하여 전체 1600명,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268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하였다. 수급권자의 목소리와 빈곤의 실상이 반영되어 진정으로 ‘기초생활’을 보장할 수 있도록 조속한 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최옥란열사의 49재에, 장애인·복지단체들은 "국가가 결정·공표하는 최저생계비가 실질적으로 빈곤계층의 최저생계를 보장하지 못해 행복추구권 등 헌법 상의 기본권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나, 기각된 바 있다. 2002년도 최저생계비는 1인가구 34만 5천원, 4인가구 98만9천원이었다. 2010년 최저생계비는 꾸준히 인상되어 1인가구 50만원, 4인가구 136만원이 되었다고는 하나, 평균소득과 비교하면 30%를 겨우 넘는 것으로 여전히 너무나도 열악한 상황이다. 노동을 하고 있든 아니든, 장애가 있든 그렇지 않든, 부양의무자가 있든 아니든, 기본생활소득을 확보할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의 생존은 국가와 사회가 책임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보다 많은 최옥란이 절망을 딛고 스스로의 권리를 제기하는 가운데 함께 하는 투쟁을 만들어갈 때다.

  20100414_한뇌협_최옥란열사와 기초법10년.hwp

* 위 원고는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소식지 '바롬'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