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노동권마저 박탈하는 근로능력평가

"장애인은 노동력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 자체가 노동권 박탈"
"근로능력 유무를 가르는 기준 자체를 폐지해야 " 지적 잇따라

홍권호 기자 / shuita@beminor.com
기초생활보장제도 근로능력평가기준 규정 무엇이 문제인가?
기초생활보장권리찾기행동과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 주최로 6일 늦은 2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근로능력평가기준 규정의 문제점을 살펴보는 토론회가 열렸다. ⓒ비마이너


정부가 시행 중인 근로능력평가기준 규정이 장애인의 노동권을 박탈하고 있다는 지적과 더불어 근로능력 유무를 가르는 기준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기초생활보장권리찾기행동과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 주최로 6일 늦은 2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기초생활보장제도 근로능력평가기준 규정 무엇이 문제인가?’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중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양영희 소장은 “장애인은 신체적 손상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식 때문에 경제활동을 꿈꿀 수조차 없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일할 수 없다는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근로능력평가기준”이라고 지적하고 “장애인이면서 근로능력평가에서 근로능력이 없다고 평가를 받는다면 그 장애인을 고용하는 회사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양 소장은 “뇌병변 1급 장애를 가진 저는 문서를 작성할 때 1분에 20타를 치기 때문에 근로능력이 없다는 평가를 받겠지만 활동보조인이 있다면 그 누구보다 뛰어나게 문서를 작성할 수 있고, 며칠 걸릴 문서를 하루 만에 작성할 수도 있다”라면서 “이렇게 사회적 여건에 따라 근로능력이 달라질 수 있는데 신체적 능력 또는 상황만을 가지고 근로능력을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라고 지적했다.

홈리스행동 이동현 집행위원
홈리스행동 이동현 집행위원이 피해 사례를 중심으로 본 근로능력평가기준 규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비마이너


홈리스행동 이동현 집행위원은 “복지부의 규정에 따라 ‘근로능력 없음’ 상태인 1~4급의 중증장애인들도 적합한 작업 환경을 조성하고 합당한 급여가 보장된다면 충분히 노동에 따른 급여로 생활이 가능하다"라면서 "본 단체가 만나고 있는 한 3급 청각장애인도 지역자활센터에서 비장애인과 함께 벌써 수년째 자활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라고 중증장애인을 근로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규정한 근로능력평가기준을 비판했다.

이 집행위원은 올해 1월부터 근로능력판정기준 규정이 적용되고 나서 △수급자도, 의사도 근로능력판정을 위한 ‘근로능력 판정용 진단서’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례 △전담 공무원들의 업무 과중 등으로 실제로 실시되지 않는 활동능력 평가 사례 △복지부가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만 자활사업에 참여하도록 지침을 내려 근로능력이 없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희망근로에서 배제된 사례 등을 차례로 제시하며 “근로능력 유무를 가르는 기준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상임활동가는 “노동능력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데 (근로능력평가기준 규정에서) 장애인은 노동력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 자체가 장애인의 노동권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오히려 복지부가 장애인의 노동권을 박탈하는 지침을 만드는 상황에서 장애인 노동권이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질타했다. 이어 명숙 상임활동가는 “장애인의 노동권을 배제했을 뿐만 아니라 수급자들이 스스로 자활근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부과한다는 점에서 강제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전은경 팀장은 “근로능력평가기준 규정은 희망근로사업에 참여하려다가 장애인은 근로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사례에서 보듯이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충돌할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담당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제대로 지켜질지 의문”이라고 지적하고 “지금 복지부가 해야 할 일은 근로능력판정기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부 통계만으로도 410만 명에 이르는 비수급 빈곤층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이상희 전 기초생활보장관리단장은 “중증장애인이 근로무능력자로 돼 있는 것은 사회적으로 일반화된 시스템이 아니라 우리 틀 내에서 판정한 것인데 여기저기에서 갖다 써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라면서 “이러한 문제 때문에 현재 내부에서 용어 변환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상희 전 단장은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지도 않았는데 여러분들은 근로능력자가 너무 많이 양산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라면서 “기준 자체로 인해 근로능력이 없는 수급자가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로 전환되는 일은 없다고 보며 근로능력이 있는데도 없다고 돼 있는 경우에 한해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로 전환시키는 방향에서 제도가 도입되었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라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1월 1일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근로능력 판정을 위해 ‘근로능력평가의 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만들어 근로능력을 평가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국민기초생활 수급자는 근로능력 유무를 평가받기 위해 의학적 평가와 활동능력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의학적 평가는 근로능력 수행에 영향을 미치는 신체적 또는 정신적 질환이나 장애 정도를 의사가 평가하고, 활동능력 평가는 근로능력 수행에 미치는 활동능력 정도를 평가 담당 공무원이 평가한다. 이 근로능력평가 기준은 의료급여 1종, 2종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며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정이 되면 조건부 수급자가 돼 자활근로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활동능력 평가기준은 외모가 혐오감을 주거나 외모에 대한 관리능력이 없음, 산만하여 한 가지 일도 마무리 못하는 등 집중력이 없음, 자포자기 하거나 작심삼일임 등의 항목이 근로능력이 없는 수급권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갖게하거나 인격권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는 판단으로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전면적인 개정을 권고받아 수정되는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