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

 

‘약자와의 대화’ 없는 ‘약자와의 동행’은 허구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쪽방 주민 등 홈리스 당사자와 면담하고 대화하라

 

오세훈 서울시장은 7월 1일, 온라인으로 열린 제39대 서울시장 취임식을 마치고 창신동 쪽방촌을 방문하였다. 이 자리에서 오세훈 시장은 “약자와의 동행 현장을 찾았다”며, “노숙인‧쪽방 주민을 위한 3대 지원방안”을 발표하였다. 6월 말, 취임 직전에 돈의동 쪽방촌을 방문한 데 이어 취임 첫 행보로 창신동 쪽방을 선택한 것은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서울시 정책 브랜드를 극적으로 전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열흘 전부터 이런저런 검토 끝에” 만들어졌다는 오세훈 시장의 현장 발언에서 짐작되듯, 노숙인‧쪽방 주민을 위한 3대 지원방안은 장기·근본 대책을 누락한 임기응변에 불과했다.

더위가 아니라, 폭염을 증폭하는 취약한 주거가 문제다

서울시는 폭염 대책으로 민간후원을 활용해 에어컨 150대를 설치하고, 이에 수반되는 전기요금을 가구당 5만원 한도로 지원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150대란 물량은 서울지역 쪽방 건물의 절반 밖에 포괄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머지는 폭염 대책의 사각에 처하게 된다. 에어컨이 설치되는 건물도 각 실 별이 아닌 동별 내지 층별 설치가 이뤄지게 돼 냉방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자구적으로 냉방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방문을 개방해야 해 안전과 사생활 침해의 우려 또한 존재한다. 살인적인 폭염을 다루는 가장 적합한 기계적 장치가 비록 에어컨이라 하더라도, 이것을 중심으로 한 폭염 대책은 선택적이거나 제한적이다. 서울지역 쪽방 건물 중 ‘목조’ 건물은 43.2%에 달한다. 건물의 노후화에 따른 구조 안전 문제와 건물주들의 저항, 내부 공급 전력의 문제 등을 함께 고려할 때 에어컨 설치의 전면 확대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당장은 일부 물량의 에어컨 설치를 대책으로 하더라도 이는 쪽방 주거환경의 개선이라는 근원적 대책 속에 배치되어야 한다. 오세훈 시장은 공공주택지구로 발표만 되었을 뿐 지구지정이 이뤄지지 않아 속만 끓이고 있는 동자동 쪽방촌 공공주택 지구지정을 위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것이 약자의 마음을 읽는 길이다. 양동, 창신동 쪽방 등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으로 지정된 쪽방 주민의 사전 퇴거 방지와 적정 면적의 임대주택이 건립될 수 있도록 세부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그것이 약자의 곁에 서는 일이다.
 

주거 특성을 고려한 급식 지원, 법규를 준수하는 급식 지원이 먼저다

서울시가 내놓은 3대 지원방안 중 두 가지는 급식지원에 관한 것이다. 서울시는 5대 쪽방촌 인근에 각 10개씩 ‘동행식당’을 지정하고, 쪽방주민에게 1일 1식을 지원하기로 하였다. 또한 거리 홈리스가 이용하는 노숙인 시설의 급식을 1일 2식으로 늘리고, 급식단가도 인상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1일 1식에 불과한 동행식당 식권 제공으로 쪽방 주민의 먹는 문제가 얼마나 나아지겠는가? 서울지역 쪽방 건물 284개 동(2021년 기준) 중에서 공동 부엌조차 없는 곳은 190개 동으로 전체의 67%에 달한다. 대다수 주민들은 동행식당에서의 한 끼를 제외하고는 무더운 이 여름에 비좁은 쪽방에서 휴대용 버너로 음식을 조리해야 한다. 거리 홈리스를 위해 노숙인 시설의 급식을 1일 1식에서 2식으로 늘리고, 급식단가를 500원 올린다는 것 역시 한계가 명확하다. 서울시는 급식 식수 인원을 늘리기 이전, 법률이 정한 바대로 급식지원을 해야 한다. 「노숙인복지법」은 「식품위생법」이 정한 집단급식소 설치·운영 기준에 맞게 ‘노숙인 급식시설’을 설치, 운영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오세훈 시장이 창신동 쪽방 이후 연이어 방문한 ‘서울특별시립 따스한채움터’ 조차 이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 따스한채움터는 집단급식소는 커녕 외부에서 봉사단체들이 만들어 온 음식을 단순 배식하는 장소에 불과하다. 거리 홈리스가 이용하는 서울시 내 노숙인 일시보호시설 부설 급식소 7개소 중 집단급식소로 신고된 곳은 고작 3개소에 불과하다. 취약한 쪽방 건물의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관련 법률이 정한 급식지원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도입되는 프로그램식 사업으로는 홈리스의 먹거리 복지를 보장할 수 없다.

우리는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책 기조에 동의한다. 그러나 ‘동행’ 즉, ‘같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같이 갈 길을 정하는 작업, 이를 위한 대화와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쪽방촌에서 발표하는 대책이 중요한 게 아니라, 쪽방 주민과 토론하고 궁리해서 함께 만드는 대책이 필요하다. 그런 것이어야만 약자와 동행한 결실이라 할 만하다. 우리는 상징이 아니라 실재다. 우리의 빈곤은 상징이 아니라, 매일마다 극심하고도 구체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다. 우리는 필요할 때 배경 삼는 병풍이 아니다. 진정 쪽방 주민이 약자라고 생각한다면, 약자와의 동행 의지가 진실이라면, 먼저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우리의 면담 제안에 신속히 응답하기 바란다.

 

2022년 7월 12일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보도자료 원문 : https://bit.ly/3RoD1x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