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합동사회장 장례위원회 요구안>

가진 자들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가 아니라

불평등을 발생시키지 않는 세상을 원한다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라

 

88일 서울시 노원구에서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신청을 한 뒤 홈리스 상태에서 두 달째 결과를 기다리던 남성이 차 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729일에는 서대문에 거주하던 뇌병변 장애와 희귀질환이 있는 30대 수급자 남성이 사망한 채 발견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7월과 8월 두 달간 언론에 보도된 것만 종합하여도 서울시 강서구와 중랑구, 도봉구, 은평구와 동두천시에서 연일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죽음이 보도되었다.

 

사람들은 또 다시 질문하기 시작했다. ‘왜 발견하지 못했는가!’ 코로나19 때문에 대면 서비스가 줄어들어서, 사회복지 업무가 폭증해서 등 다양한 진단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런 질문을 넘어설 것을 제안한다. 발견의 문제가 아니다. ‘진짜가난하거나 아프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안일한 복지제도의 문제다. 가난한 사람들을 삶의 자리에서 뿌리 뽑고 이웃도 가족도 없이 살 게 만드는 개발의 문제다. 간병, 장애, 노화가 요구하는 지원 부담을 개인과 가족에게만 전가한 결과다. 불평등을 양산해온 우리 사회 총체의 댓가다.

 

우리가 지금 목도하는 가난한 이들의 죽음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송파 세 모녀와 중랑구, 강북구 모녀를 비롯해 수급탈락 후 요양병원에서 몸을 던진 노인들과 치료를 거부당하고 병원 입구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가난한 이웃들의 죽음을 목도한 이곳에서 다시 일어난 일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 조치와 경제위기는 기존의 불평등을 경로로 가장 낮은 곳에 가장 먼저 위기의 비용을 전가하고 있다.

 

살아서는 짐 취급하다가 죽음만을 애도하는 사회라면 그 추모에는 기만이 있지 않은가. 변화를 위한 계획을 문재인 정부의 대선 후보들에게 묻는다. 우리는 불평등의 보완이 아니라 불평등을 발생시키지 않는 사회로의 재편을 요구한다. 빈민이 아니라 빈곤에 맞서라!

 

장애인, 빈곤층의 생존과 권리를 보장하라

빈곤문제와 장애인권리보장을 위한 첫 번째 방안은 현재의 빈곤층에게 튼튼한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빈곤층 복지는 선정기준이 낮고 최소주의를 지향해 수급자가 되기도 어렵고, 수급자로 살기도 어렵. 부양의무자기준, 까다로운 선정기준, 낮은 보장수준과 근로능력평가, 장애인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와 같은 당사자들의 처지와 맞지 않는 기준이 빈곤층과 장애인권리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다. 복지제도 개선과 장애인권리 보장을 위한 당사자들의 피 끓는 목소리는 파업하는 의사들이나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이었던 상위 4% 집부자들의 목소리처럼 중요한 정치 쟁점으로 다루어지지도 않았다. 우리는 복지의 느린 확대를 원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부양의무자기준 전면 폐지 및 기준중위소득 대폭 인상, 장애인의 탈시설-자립생활 보장을 위한 모든 조치에 나서라.

 

불평등을 발생시키는 사회 전체의 변화를 원한다

IMF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비롯해 사회의 위기 때마다 노동자 서민은 정리해고와 노동법 개악과 같은 고통분담을 강요받았으나 재벌과 대기업은 대규모 공적자금을 지원받았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와 같은 새로운 재난의 일상화는 불평등을 확산하는 새로운 경로가 되고 있다. 교육, 의료, 사회서비스, 에너지, 주거와 같은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기본권은 권리가 아니라 각자의 형편에 따라 구입하는 상품이 되었고, 복잡해지는 경쟁 끝에 소수의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사회에서 보편 인권과 경제 정의라는 관점은 모두의 머릿속에서 희미해지고 있다. 빈곤은 분배에 실패한 사회의 책임이지만, 우리 사회는 빈곤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데 능숙하다. 누구의 어떤 패배도 그의 생존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가난한 이들의 삶이 죽음으로만 드러나는 우리 사회는 실패한 선진국이다. 불평등을 발생시키는 사회전체의 변화를 위한 조치에 나서라.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복지확대를 지금 당장 요구한다

빈곤에 빠진 모든 이들의 소득보장을 위해 기초생활보장제도상 부양의무자기준과 근로능력평가 조사 제외. 소득, 재산기준 완화

긴급복지지원제도의 재산기준을 제외하고, 코로나로 인한 모든 생활상의 위기를 긴급복지지원법상 위기사유로 인정. 신청자 전원에게 즉시 지원금 지급

살기에도, 감염에도 취약한 생활시설과 요양병원 수용인에게 지역사회에서의 안전한 삶을 보장,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위기의 시대, 모든 이들에게 안전한 주거지를 보장, 공공주택 대폭 확대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 발달중증장애인의 개인별지원서비스 국가 책임 강화

발달중증장애인 지역사회 지원체계, 개인별 서비스 24시간 보장

공공의료 확대,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의료접근권 보장

- 활동지원, 간병 등 사회서비스 확대와 중단 없는 보장

 

불평등의 보완이 아니라 불평등을 발생시키지 않는 사회를 요구한다. 빈곤 철폐와 장애인권리보장을 하기 위한 사회 개혁에 나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