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



서울시 공영장례제도를 무력화하는

중구청의 무연고 장사행정 규탄한다


작년 7월 11일, 당뇨 합병증세로 수술을 받고 춘천의 한 요양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던 중구 쪽방 주민 김정원 님이 사망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죽고, 그의 사체가 말끔하게 처리된 지 다섯 달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아야했다. ‘노숙’이라는 처참한 시절을 함께 보냈고, 홈리스야학에서 늦깎이로 ‘한글’을 배우고, ‘노숙’을 한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차별에 대항했던 그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우리의 배웅 없이 떠나고 말았다. 여기 중구청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행정이 그의 마지막을 무연(無緣)의 장소에서 정리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2018년 3월 22일,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공영장례 조례>를 제정하였다. 그러면서 “가족해체와 빈곤 등으로 장례를 치를 수 없는 무연고자 및 저소득층에 대한 장례지원”으로 “고인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상부상조의 공동체의식과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라는 사회복지의 가치를 실현”하겠다고 호언하였다. 그러나 고인은 서울시 공영장례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연고자라 할 가족이 없었고, 가난했고, 존엄해야 할 인간이었지만 중구청은 그에게 공영장례를 허락하지 않았다. 서울시 공영장례조례는 서울시에 주민등록을 둔 무연고자나 장제급여 대상자를 지원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중구청은 사망지가 서울-경기 지역일 경우에만 지원하는 것으로 소극 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고인은 장례 의식 없이 화장되고 말았다. 만약, 이런 행정이 서울 전역으로 일반화된다면 간병비 등 비용의 문제로 지역의 요양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가난한 이들 대다수에게 서울시 공영장례제도는 그저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뿐 아니라, 중구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정한 사항을 지키지 않거나 태만히 하였다. 법률은 “무연고 시신 등을 처리한 때”에는 “지체 없이 공고” 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중구청은 고인이 화장된 지 5개월도 더 지난 작년 12월 27일에서야 공고를 하였다. 통상 화장한 지 4~50일 후에 공고가 이뤄져왔던 그간 이력을 볼 때 중구청은 고인에 대한 공고를 누락했다 뒤늦게 시행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공고 시 수록해야 할 내용이 누락되었거나, 사실과 다르며, 게시 의무가 부여된 ‘장사정보시스템’에 공고가 등록되지 않은 사실들도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일련의 문제는 가난한 이들의 죽음을 대하는 중구청의 태도를 드러내는 것으로, 결코 미숙하고 더딘 행정이라 용인할 성질이 아니다.

중구는 법률이 정한 사항마저 지키지 않는, 조례가 정한 공영장례를 무력화시키는, 오직 한 번 뿐인 동료의 마지막 길 마저 배웅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장사행정을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중구와 서울시는 이와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그리고 뒤늦게나마 고인이 애도받을 수 있도록 아래와 같은 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하나. 중구청은 우리의 동료, 고 김정원 님의 유골을 서울 무연고 추모의집으로 이송하기 바란다.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유골마저 외롭지 않도록, 서울시 무연고사망자의 유골이 봉안되어 있는 무연고추모의집으로 고인의 유골을 속히 이송하여 추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둘. 중구청은 서울-경기지역으로 공영장례 적용지역을 제한하는 행정방침을 폐지하고, 서울시에 주소를 둔 지원 대상자 모두에게 공영장례를 시행해야 할 것이다.


셋. 서울시 또한 책임이 있다. 사망지와의 거리를 문제로 공영장례가 무력화 되지 않도록, 사망지가 어디든 지원대상이라면 공영장례가 시행되도록 지침을 명시해야 할 것이다.


2020년 1월 14일

<공영장례제도 무력화하는 중구청의 무연고 장사행정 규탄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보도자료링크 : https://docs.google.com/document/d/1fKfQvBdYNosHPRorivc4U3IJJsFmRK1VjCgKHosHT3Q/e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