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기초생활보장법 개정논의에 대한 민생보위 입장

-현재 논의 중인 기초법 개정안은 기초법 해체안이다

-현행 기초법 유지와 혁신 + 다양하고 실효성 있는 개별급여가 필요하다

-송파 세모녀를 구하지 못하는 ‘세모녀법’에 반대한다

 

 


현재 제 329회 정기국회에서는 이른바 ‘송파세모녀법’이란 이름으로 현재의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맞춤형 개별급여체계’로 개편하기 위하여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우리는 현재의 논의가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고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판단하며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의 방향에 대해 입장을 밝힌다.


 

1)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긴급한 문제점은 ‘낮은 보장수준과 넓은 사각지대’다.

2000년 제도 도입이후 10여년이 넘게 시행된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소한의 삶을 보장한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보장수준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급여수준을 결정하는 기준선은 최저생계비이다. 2014년 기준으로 최저생계비는 1인가구 603,403원 2인가구 1,027,417원 3인가구 1,329,118원 4인가구 1,630,820원이고 실제로 현금으로 지급받는 생계급여기준선은 1인가구 488,063 2인가구 831,026 3인가구 1,075,058원 4인가구 1,319,089원이다.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누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더군다나 최저생계비는 중위소득과 견주어서 볼 때 2003년 40.7% 2007년 37.7% 2010년 37.4% 등으로 지속적으로 낮아져왔다.

3년에 한번 계측조사를 실시하고 표면적으로는 중립성을 띠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심의·의결로 결정이 되지만, 조사자의 자의성이 개입되는 전물량방식의 계측방식, 지역별·가구 특성별 생활수준이 반영되지 않는 획일적인 잣대, 무엇보다 정부예산에 따라 인상폭이 크게 영향받는 문제 등 구조적인 한계가 작용한 까닭이다.

 

둘째, 사각지대가 매우 광범위하다는 점이다. 2011년 기준 빈곤율은 12.4%로 제도 도입 당시인 1999년 11.4%보다 오히려 높은 상황임에도,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수는 2000년 148만 명에서 2013년 상반기 138만 명으로 오히려 크게 줄었으며 2014년 상반기에는 135만명으로 더욱 줄어들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포괄하지 못하는 빈곤층 사각지대는 더 커진 것이다. 빈곤으로 고통 받는 많은 국민들을 위해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선이 절실함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복지재정지출은 GDP대비 OECD국가 최하위권이며 총액은 가장 적다.

 

즉, 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낮은 보장수준과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은 이러한 문제해결과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송파세모녀법’이란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송파세모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2)현재 논의 중인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은 기존 기초법의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악화시킨다

 

먼저 지적할 것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특징적 요소인 ‘최저생계비’를 없애거나 무력화 시킨다는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기본취지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최저기준(최저생계비)을 정하고, 모든 국민에게 적어도 그 이상의 생활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개편안은 교육빈곤층, 주거빈곤층 등 한두 가지 급여만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다는 핑계로 국가 빈곤정책의 기준선으로 기능하는 최저생계비를 폐기하고 있다. 외래환자 진료 시설을 마련하겠다며 중환자실을 없애버리는 모양새다. 1994년, 생활보호법에 따라 지급받는 월 6,5000원으로 도저히 살 수 없어서 헌법소원을 제기한 노부부에게 헌법재판소는 "비록 위와 같은 생계보호의 수준이 일반 최저생계비에 못미친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만으로 곧 그것이 헌법에 위반된다거나 청구인들의 행복추구권이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할 것이다"고 응답한 사실을 국회는 상기해야 한다.

 

둘째, 선정기준과 보장수준은 현재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후퇴한다. 현재 논의 중인 중위소득 기준 생계급여 30%, 의료급여 40%, 주거급여 43% 등의 선정기준은 현행 최저생계비가 중위소득 40%정도 라는 것을 고려할 때 현재와 비슷하거나 차상위계층(최저생계비120%)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려하는 것은 의료급여의 경우 그 대상자가 더 축소(의료급여 2종 폐지)되고 주거급여 등의 보장수준이 낮아진다는 점이다. 주거급여는 실제 임대료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판받아왔는데 새로운 주거급여의 보장수준은 오히려 낮아진다. 공공주택 및 임대아파트 거주자에게는 이제 직접 현금급여로 주거급여가 제공되지 않을 예정이며 실제 월세만큼만 지급돼 실제 체감하는 급여수준은 더 낮아질 것이다. 지역별 기준임대료를 책정해 월세지원을 현실화하겠다고 했지만 기준임대료는 현재 주거급여보다 대부분 수급가구에서 오히려 하락한다. 뿐만 아니라 이번 개별급여 도입 방식은 자활사업의 대부분을 고용노동부로 이관시키거나 주거급여를 국토교통부 사업으로 이관하는 등 빈곤층에 대한 책임 부처를 불명확하게 해 수급자의 권리박탈이 예상된다. 이는 최저생계비 폐지와 함께 기초생활보장법을 침몰시킬 것이다.

 

셋째, 정부는 법 개정을 통해 부양의무자기준을 완화한다고 선전하나, 대규모의 사각지대는 여전히 잔존하게 된다. 현재 정부는 부의무자 가구의 소득기준을 완화해 약 12만명의 수급자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해 수급조차 받지 못하는 117만명의 10%정도밖에 포괄하지 못하는 미미한 수준이며, 최근 3년 사이 기초법 밖으로 내쫓긴 빈곤층 숫자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20만명의 수급자를 줄이고 12만명을 다시 늘리는 것이 ‘사각지대 해소’인가? 특히 부양의무자 소득기준 완화는 정부가 의지만 갖고 있으면 시행령의 개정만으로 가능하다. 개별급여체계의 개편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내용을 제도를 바꾸는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의 한계는 분명하다. 우리는 국회의 잘못된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정안 논의 중단을 촉구하며 다음과 같은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제안한다.

 


3)기초법 개정의 기본 방향을 제안한다

 

1. 선정기준과 보장수준인 최저생계비는 유지·현실화 되어야 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취지대로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최저생계비가 만들어질 때 사각지대도 해소될 수 있다. 최저생계비가 삭제되는 것이 아니라 최저생계비 이하 빈곤층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될 수 있도록 튼튼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 최저생계비는 유지되어야 하며, 가구·지역·욕구에 따라 보충적으로 구성될 수 있어야 한다.

 

2. 부양의무자기준은 폐지되어야 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의 가장 큰 원인은 부양의무자기준이다. 부양의무자 범위는 두 차례의 법률 개정을 통하여 현재의 ‘1촌의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로 축소되었으나, 오히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는 확산되고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하여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이나, 수급자 선정에서 제외된 비수급빈곤층 규모는 2010년 기준 117만 명으로, 2006년 기준 103만 명보다 14만 명이 증가했다. 가난 때문에 사람이 죽는 나라에서 ‘가난한 이들의 가난한 가족’에게 복지의 책임을 떠넘기는 일은 중단되어야 한다. 이제 ‘가족부양’이 아니라 ‘사회부양’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3. 통합급여를 기반으로 한 개별급여를 도입해야 한다

개별급여의 도입은 선정기준과 보장수준을 상향해 기존 기초법 위에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정부 추진안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쪼개 만드는 ‘무늬만 개별급여’에 불과하다. 우리는 각 급여의 수준을 최저생계비 위로 쌓아올리는 ‘진짜 개별급여’를 요구한다. 이는 현재 제도를 무리하게 변경하지 않고도 충분히 가능하다. 예를 들어 이미 운영 중인 차상위 의료급여는 최저생계비 120%의 차상위 빈곤층 중 희귀난치질환이나 만성질환을 가진 이들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주거급여와 교육급여도 동일한 형태로 운영할 수 있다.

 

정부의 개별급여는 기존 수급자의 급여와 권리는 축소시키고, 신규 수급자의 빈곤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선정기준과 보장수준을 갖는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개별급여 도입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밝힌다.

①의료급여는 빈곤층의 의료비부담을 덜고 질병으로 인해 빈곤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빈곤예방을 위한 제도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의료급여대상은 의료비가 가계의 부담이 되는 소득기준까지 확대되어야 하며 최소한 차상위계층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건강보험 비급여진료비를 포함한 본인부담상한액을 적용해 돈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②주거급여는 빈곤층의 주거비 부담을 실질적으로 덜어줄 수 있어야 한다. 송파 세모녀는 월소득 150만원에 50만원의 월세를 지불하는 ‘주거빈곤층’이었지만 개정안이 통과되어도 주거비 보조는 받지 못한다. 공공주택 확대를 기본 목표로 불공정한 민간 임대시장에서 빈곤층이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며, 실제 임대료에 준해 급여가 지급될 수 있어야 한다.

③자활급여는 노동욕구가 있는 빈곤층에게 확대되어야 하며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해야 한다. 현재도 차상위계층의 자활참여가 가능하나 일자리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진입이 거절되곤 한다. 갈수록 강화되는 시장취업 우선형 자활사업이 아닌 공공의 질 좋은 일자리 확대로 빈곤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기초법개악저지, 빈곤문제해결을 위한 민생보위>는 지난 2013년 7월 정부의 기초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2013년 7월 수급자 가계부 조사, 8월 수급자하루잔치, 11월 여의도 국회 앞 농성 등을 진행해왔다. 기초생활수급자들과 비수급빈곤층,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탁상공론의 파국’을 피할 수 없을 것임을 경고한다. 정부와 국회는 기초법 개악시도를 멈춰라.

 

 

 

 

2014년 11월 17일

기초법개악저지! 빈곤문제해결을 위한 민생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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