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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세모녀를 추모하며

- ‘발굴이라는 우문을 넘어 빈곤을 만드는 구조를 질문할 때

 

지난 821일 수원에 거주하던 세 모녀가 주검으로 발견됐다. 세 모녀가 남긴 유서에는 지병과 빚으로 생활이 힘들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왜 발견하지 못했는가에 대해 질문하지만 우리는 이 질문에 수정을 제안한다.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왜 발굴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은 빈곤층 죽음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 되었지만, 이는 송파 세모녀가 복지제도를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외되었다는 잘못된 사실에 뿌리 두고 있기 때문이다.

빈곤은 경제적 결핍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빈곤은 분배에 실패한 사회의 증거이며, 빈곤에 의한 죽음은 그 실패의 결과다. 수원 세 모녀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발표한다.

 

- 발굴이라는 우문을 넘자

송파 세 모녀의 죽음 이후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를 통해 정부는 건보료, 수도·광열비 등의 체납정보를 수집해 위기 가구를 선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빈곤층이 어딘가 숨어 있다는 착각을 안겨준다. 빈곤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는 이들은 우리 사회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이다. ‘발굴이 실패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체납기록, 부채와 같은 정황이 빈곤문제와 가까운 것은 사실이나 빈곤의 모양은 더 다양하기 때문이다. 송파 세 모녀는 임대료나 공과금을 체납하지 않았다. 창신동 모자는 집이 있어 공과금 체납에도 불구하고 복지제도 대상 아니었다. 관악구 모자는 재개발 임대아파트에 거주해서 정보 수합 대상에서 빠졌지만, 정부의 대책은 재개발 임대아파트를 정보 수합 대상에 포함시겠다는 것에 불과했다.

우문에 의해 정부는 계속해서 사회복지통합전산망에 통합하는 정보의 갯수만 늘리고 있다. 한 바구니에 모아둔 부채를 비롯한 민감정보는 언제 어떤 문제를 발생시킬지 모르지만, ‘사각지대 발굴이라는 미명은 무방비하게 정보를 모으는 것을 비판하기 어렵게 한다. 이를 통해 발굴하더라도 사회보장제도의 미비로 지원할 방도가 없다는 사실이나, 몇 개의 체납정보 합이 누구의 빈곤이 더 심각한가밝히는 기제가 될 수 없다는 현실은 가려진다. 실제 201512월부터 20166월달까지 보건복지부가 빅데이터를 이용해 발굴한 취약계층의 숫자는 21만명이었으나, 긴급복지 및 기초생활보장제도로 연결된 경우는 3444명에 불과해 1.64%에 그쳤다.

 

- 빈민이 아니라 빈곤과 싸우는 국가가 필요하다

비극적이게도 우리는 죽음보다 가난이 두려운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난 이들이 아무런 구조신호도 보내지 않고 그저 침묵한 것은 아니다. 송파 세모녀도, 관악구와 창신동 모자도 모두 복지 신청을 시도했으나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어려울 때는 주민센터로 방문하라고 하지만 주민센터 가도 해당하는 복지제도가 없는 현실을 마주하면 그 경험은 모욕이 된다. 복지제도를 신청한 사실이 없다는 것은 비극에 빠진 이들이 능동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암시하며 개인에게 책임을 돌린다. 그러나 이는 빈곤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불안정노동, 저임금, 경쟁적 사회제도에서 긴 시간 경험한 좌절과 낙담, 단념은 빈곤이 개인에게 전가하는 심리적 외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최종적 위기인 빈곤상황에 빠졌을 때 복지의 관문엔 환영이 없다. 낮은 선정기준과 보장수준, 잦은 탈락 위기와 부정수급자가 아닌지 의심하는 시선은 빈곤층을 공격한다. 복지수급자에 대한 냉랭한 시선, 까다로운 제도운영 방식은 복지수급자의 자율성과 역능을 침범하고, 내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사회가 함께 해결해 줄 것이라는 신뢰와 연대의식을 파괴한다.

빈곤은 불평등한 사회구조, 소수가 모든 것을 독점하는 사회의 결과다. 가난한 이들을 고리의 대출로 꾀어내는 약탈적 금융, 장애가 있거나 아픈 이들과 그 가족이 병원비와 돌봄 필요에 압사당하는 사회에서 이를 회복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 기준중위소득 대폭인상과 같은 당면 과제를 해결함은 물론이고, 빈곤 철폐를 위한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빈곤층 복지제도가 최소한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역량 안에서 가능한 최대로발휘되어야 한다는 목표의 전환이 없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가난한 이들의 죽음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빈민이 아니라 빈곤에 맞서 싸우라.

 

가난한 이들의 연쇄적인 죽음은 가난한 이들 개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다. 가난과 차별 없는 세상에서 영면하시길 빌며, 빈곤과 불평등 없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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