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홈리스추모제 권린선언문

 

노숙인복지법이 제정된 지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그동안 여러 제도와 지원사업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인권의 원칙을 새기지 못한 법은 홈리스 상태에 놓인 우리의 현실을 조금도 바꿔내지 못했다. 여전히 우리는 보편적인 권리의 주체가 아닌 시혜와 교정의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여전히 집다운 집이 아닌 거처에서 살고 죽는다. 여전히 밥다운 밥을 먹지 못하고, 치료다운 치료를 받지 못하며, 일다운 일 대신 저질 일자리를 강요받는다. 여전히, 사람이라면 응당 누려야 할 모두의 권리가 침해받고 훼손당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빈곤과 차별을 넘어서기 위해 우리의 이야기를 모아 쓴 선언문을 다시 한 번 꺼내든다. 모든 사람은 인권의 주체이고, 인권에 앞서는 기준이나 조건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의 권리 보장이 곧 모두의 권리를 보장하는 길임을 말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함께 쓴 홈리스 인권선언>

 

하나. 우리도 더불어 사는 사람이다. 차별하지 말라! 

홈리스 문제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다. 가난을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지 말라. 홈리스에겐 편견과 낙인의 딱지를 붙이지 말라. 차별은 폭력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해야 한다.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대하지 말라.

 

하나. 우리도 환자다. 치료다운 치료를 원한다! 혼자라고 무시하지 말라. 

장애인이라고 깔보지 말라. 홈리스라고 치료를 거부하지 말라. 술 취한 홈리스도 차별 없이 치료받아야 한다. 돈보다 치료가 먼저다. 공공병원을 늘려라. 돈 없어도 치료받을 권리, 제대로 나을 때까지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라.

 

하나. 무료급식, 공짜가 다가 아니다. 우리에게 존중받는 밥상을! 

누구나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맛있고 영양 좋은 식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김치만이 아니라 골고루 반찬이 있어야 한다. 밥이랑 종교랑 엮지 말라. 굴욕적인 밥상이 아닌 존중받는 밥상을 원한다.

 

하나. 쫓겨나고 내몰리는 악순환은 그만! 우리에게 머물 권리를! 

주거박탈은 모든 권리의 박탈이다. 대책없는 쪽방철거는 거리노숙을 만들 뿐이다. 쪽방을 철거해서 그저 없애는 게 아니라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개선하라. 임시주거지원 정책을 제대로 만들고 확대하라. 

 

하나.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 홈리스를 표적 삼지 말라!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 함부로 불심검문 말라. 경찰은 홈리스의 피해가 큰 명의도용 범죄를 제대로 단속해서 당한 사람이 억울하지 않도록 하라.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공장소를 홈리스라는 이유로 가로막지 말라.

 

하나.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면 제대로 투표권을 보장하라!

정치 참여의 기본인 선거에서 우리도 유권자이다. 홈리스의 투표권 보장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라. 기다리다 지친다. 공공역사에 투표소를 더 많이 설치하라. 장애가 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문턱이 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

 

하나. 지원을 무기 삼지 말고, 우리 의사를 존중하라! 

홈리스는 여전히 권리의 주체가 아닌 통제의 대상으로만 여겨지고 있다. 복지는 인간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홈리스 정책에 홈리스 인권 현실을 반영하고 제대로 이행하라. 

 

하나. 존엄한 죽음을 맞을 권리, 추모와 애도의 권리를 보장하라!

매년 홈리스 사망자가 늘어나지만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는 현실이다. 홈리스 사망자는 무연고라는 이유로 방치되고, 죽어서도 차별받는다.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추모와 애도의 권리가 보장되도록 제대로 된 공영장례제도를 만들라. 

 

2021홈리스추모제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