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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님의 발언 전문입니다.


2020년 올해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된지 20년째가 되는 해입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부상, 질환, 실직, 노후, 장애 등 소득상실의 원인을 묻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국민에게 적용되는 가장 일반적인 공공부조제도입니다. 그러나 시행된지 20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계 및 의료급여가 필요한 인구의 2/3 정도밖에 커버하지 못하고 있어 제도가 그 목적을 현저히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효과성이 이처럼 떨어지는 대표적 원인은 대규모 사각지대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온 부양의무자기준에 있습니다. 부양의무자기준이란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의 재산과 소득이 일정한 수준에 미달하거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경우이어야 한다는 기초생활보장급여 수급요건을 말합니다. 여기서 부양의무자란 같은 가구에 속하지 않은 1촌 이내의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를 말합니다. 따라서 부양의무자 기준의 핵심은 다른 가구에 속한 사람의 재산과 소득을 기준으로 수급자격을 따지고, 부양의무자의 재산과 소득이 일정한 규모 이상인 경우 해당 재산과 소득을 같이 향유할 잠재적 가능성이 없을 것을 요건으로 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수급자는 본인의 재산과 소득뿐만 아니라, 같은 가구에 속하지 않은 부양의무자와 그 가구원의 재산과 소득의 규모, 그리고 그러한 재산과 소득을 같이 향유할 잠재적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수급 진입단계와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안습니다.
그러나 같은 가구에 속하지 않은 사람과 그 가구원의 소득과 재산은 자신의 지배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항이므로 이를 급여의 요건으로 삼는 것은 본질적으로 공정하지 못한 문제가 있습니다. 당장 생계가 급한 사람들의 인간다운 최저생활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기초생활보장급여의 성격과 취지에 비추어 볼 때 더욱 그러합니다. 취약한 상황에 놓인 사람일수록 증명책임을 부담시키는 것만으로도 사실상 권리행사를 포기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이유입니다.
 
간혹 부양의무자기준 폐지가 부양의무를 부정함으로써 가족해체를 가속화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양의무자기준은 부양의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부양의무자기준은 가족간 부양의무의 범위와 정도를 정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부양의무자기준은 그와 무관한, 공공부조의 수급요건을 정하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부양을 받지 못하는 부양권리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구조여서 가족간의 부양을 장려하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폭넓은 사각지대가 존재하여 비수급 빈곤층을 양산하고 있고, 부양의무자 기준이 그러한 사각지대의 주범이라는 데에 시민사회, 학계와 정부 내에 별다른 이견이 없습니다. 문제에 대한 진단이 나와 있다면 그에 대한 대책이 나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그러나 그 동안 시행되어 온 부양의무자기준 완화조치들은 거대한 장벽에 드문드문 구멍을 내고 알아서 찾아가라는 정도여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공공부조가 필요한 사람이 아닌 부양의무자의 사정을 중심으로 완화되어 온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2018년 10월부터 주거급여에 대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한 것이 그나마 한 걸음 나아간 조치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도 필요한 가구에 주거급여만을 제공하는 것은 출발점이 될 수는 있어도 종착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현 정부의 공약사항입니다. 현 정부 출범 첫 해인 2017년 7월에 발표된 제1차 기초생활보장종합계획은 부양의무자 기준 단계적 폐지를 주요 과제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장관은 2019년 4월 16일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에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전면 폐지하는 내용을 담겠다고 발표하였으며 이후에도 재확인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현 정부가 지금까지 단행한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조치들은 그 한계가 분명합니다.
 
임기 중반부를 훌쩍 넘어선 현재까지도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의 구체적 계획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올해 7월 말 의결될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에 담긴다지만, 정부는 벌써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대해 유보적인 듯한 태도를 보여 공약파기에 대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2020년부터 중증장애인이 수급자인 경우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고 있지 않지만, 의료급여에 대해서는 제외하고 있어 계획이 구체화되고도 전에 우려가 구체화되는 양상입니다. 부양의무자로부터 생계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빈곤층이 의료비를 지원받을 가능성은 더욱 낮습니다.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 라는 말이 방증하듯, 건강보험료를 체납하거나 체납하지 않더라도 아파도 진료 받지 못하는 의료급여 사각지대야말로 긴급하게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로 외면되어서는 안 됩니다. 치료비가 없어서 아파도 진료를 받지 못하면 빈곤화가 더욱 가속화될 수 없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1999년 제정되어 21세기의 도래와 함께 시행된 배경에는 1997년 한국을 강타한 경제위기가 있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여파 역시 이미 아래에서부터 차오르고 있습니다. 문제에 대한 진단만 내놓고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무기력과 무능력만을 보여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같은 말을 반복할 때는 이미 지났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결단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