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2019년 2월 수도권의 한 도시에서 20대 초반의 두 청년이 법정에 섰다. 구속된 채 재판을 받던 그들은 판사의 집행유예 선고를 아무 표정 없이 듣고 있었다. 구속재판에서 피고인이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순간 보이는 안도와 기쁨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잘 먹지 못하고 자란 탓에 키가 작고 마른 두 청년은 아이처럼 보였다. 한 청년은 아동보호시설에서 퇴소했고, 한 청년 역시 가정환경이 어려웠다. 비슷한 처지의 두 청년은 영세 공장에서 일하다 만났고,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공장을 그만두었지만 다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2018년 12월 겨울, 춥고, 배고픈 그들은 시장에서 빵과 난로를 훔쳤다. 경찰이 CCTV로 추적한 범인의 동선 끝에는 지하 주차장 한 구석에 종이판자로 얼기설기 지은 ‘집 아닌 집’에 사는 두 청년이 있었다.

이 연구는 왜 두 청년이 구속된 채 재판을 받아야 했고, 왜 집 없고 배고픈 그들이 아무 대책 없이 세상 속에 던져져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연구 결과 우리 사회의 현행법과 제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형사소송법」은 1954년 제정 당시부터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즉 주거부정을 구속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판자로 지은 집에 살고 있던 두 청년은 별다른 전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법에 따라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우리 사회의 복지제도가 그간 확대되어왔지만, 법의 심판을 받은 두 청년이 선고 당일 구치소 문을 나서는 순간에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들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을 제공할 수 있는 사법부, 법무부,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지방자치단체를 연결하는 체계가 구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잠을 잘 곳과 먹을 것이 없는 절대빈곤 문제는 그대로인 채, 두 청년은 다시 무방비 상태로 세상과 마주하게 되었다.

주거가 일정하지 않은 주거부정인 사람들은 경미한 범죄라도 유죄판결을 받기 전에 구금되는, 즉 미결 구금되는 경우가 많다. 미결 구금은 사고, 질병, 장애, 사업실패, 가정해체 등으로 인해 그리고 IMF 경제 위기, 코로나19 확산과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주거와 일자리를 잃게 되는 많은 사람들이 겪게 되는 문제이다. 우리 사회에는 공장, 식당, 농장, 주유소 등 일터의 일부 공간에서 살고 있어 일자리를 잃으면 생계수단과 주거를 동시에 잃는 사람들이 많다. 현행법과 제도 하에서 주거부정인 사람들이 불구속재판의 원칙을 적용받기는 어렵다.

가난 때문에 범죄를 선택한 이들에게 엄벌로 굴레를 씌우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현행법과 제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빈곤과 범죄와 처벌이 무한 반복되는 회전문을 멈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이 범죄에 이르게 된 경로를 살펴야 하고, 주거부정이라는 이유만으로 구속되지 않도록, 범죄의 경중에 비해 과한 처벌을 받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하고, 사각지대 없는 튼튼한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이 연구가 위기의 순간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큰 공동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단초가 되기를 기대한다. 향후 다양한 학문 분야의 관련 연구와 학제 간 연구가 필요하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 분야 연구의 첫 발을 뗄 수 있었다.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해주신 범죄로 처벌받았던 당사자들 덕분에 통계 속에만 존재하던 거리, 일터의 일부 공간, 쪽방·여관, 고시원 등에서의 삶을 생생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법과 제도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주신 영장전담 경험이 있는 판사, 변호사들의 도움도 컸다. 연구를 함께 설계하고, 인터뷰와 조사를 함께 진행한 이탄희 변호사, 김원진 기자, 이동현 활동가, 한국도시연구소의 연구진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의 없다시피 한 회원 관리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함께해주고 계신 한국도시연구소의 후원회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2020년 4월 24일 한국도시연구소 소장 최은영


[연구보고서] 한국도시연구소·경향신문, 떠도는 사람들의 빈곤과 범죄 보고서 (2020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