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생존’ 강요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이제 바꿔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누릴 권리’기 있다며 법으로 저소득 빈곤층의 생계를 지원해주겠다며 도입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기초법)가 도입 10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취지가 무색하게 기초법은 제도의 문제점과 비현실적인 기준선 때문에 제 기능을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수급자 수는 전체 인구의 3%에 불과한 160만 명 수준이며,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는 절대빈곤층 중 정부 통계로도 410만명 이상이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빈곤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개인과 가족에 있다?

1촌 이내의 혈족을 ‘부양의무자’로 보는 부양의무자기준은 수급권 탈락의 1순위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부양의무자’의 소득이 최저생계비(1인가구 51만원) 130%만 넘으면 부양능력이 있으며 실제 부양소득을 받고 있다고 간주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기준 자체도 불합리하거니와 사회적 문제인 빈곤을 개별 가족이 책임지라는 이 조항은 도대체 이 제도를 무엇 때문에 만들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비현실적인 재산 기준, 자동차 기준이 낳는 빈곤의 사각지대

물가와 전셋값 등 주거비, 생활비는 천정부지로 치솟지만 수급선정을 위한 재산조사의 기준 액수는 몇 년째 동결입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4인가구가 대도시에서 11.2평짜리 방2개 전세를 3,800만원이면 구할 수 있다는데, 정부에서 직접 나서서 구해보라고 하고픈 심정입니다. 또한 ‘봉고차 모녀’의 사례에서도 드러났듯 자동차를 필수이동수단으로 하는 장애인, 환자가 있는 가구나, 생계형 승합차를 소유하는 가구도 불합리한 자동차 기준으로 수급 자격이 박탈되는 형편입니다. 심지어 부채로 자동차를 압류당한 경우에도 자동차가 재산으로 인정돼 수급권이 박탈되기도 합니다.


‘자활’을 보장할 수 없는 자활사업, 일을 해도 노동자가 아니다?

기초법은 시민권에 기반을 둔 수급권리를 명시하였으나, 동시에 ‘조건부 수급’ 조항을 두어 ‘노동능력이 있는 경우’를 자의적으로 판단해 자활사업에 동원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수급자에게 조건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보니, 자발적인 취업이나 자기 선택에 근거한 자활사업 참여는 이루어지지 못하며, 일을 해도 노동권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자활사업 참여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자활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지원체계와 이들 노동자에 대한 노동권 보장방안이 필요합니다.


수급권자 권리 무시, 일방하달식 복지행정의 만연

기초법 수급은 국가와 사회의 의무이며, 수급 당사자는 복지 수급을 권리로서 부여받는다고 법은 규정합니다. 그러나, 기초법을 비롯해서, 각종 공공부조 수급대상자들은 제도가 시행되는 과정에서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어떠한 권리가 있는지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고 제도의 오류나 행정실책으로 불합리한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마땅히 이의제기를 할 통로조차 없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수급 당사자의 상황과 의지에 무관하게 제도 시행이 정부 관계자에 의해 자의적으로 변경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3월 용산구청에서는 의료급여 지침 전환에 따른 강제시행으로 당사자에게 통보도 없이 의료급여 수급권자를 1종에서 2종으로 400여명 무더기 강제전환하는 사건도 발생하였습니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운영되고 최저생계비가 결정되는 과정에 수급 당사자의 목소리가 반영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결국은 낮은 최저생계비가 문제!

2010년 최저생계비가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인상률 2.75%를 보이며 1인 가구 50만 4344원, 4인 가구 132만 6609원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이번 최저생계비 결정은 2000년 도입 이래 최저치의 인상률을 보였습니다. 최저생계비는 지속적으로 낮아졌습니다. 1999년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의 40.7%였다가 2008년에는 30.9%까지 떨어졌습니다. 경기침체로 월평균소득 증가가 멈추었다고는 하나, 지금까지 떨어져왔던 최저생계비의 상대적 수준을 회복하려면 물가상승률만을 고려해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저의 인상을 결정한 것은 현 정부의 ‘친서민’행보의 기만성을 드러내주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최저생계비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을 위한 기준선이기에 물가상승률이나 정부의 예산 수준에 짜맞추기로 결정되어서는 안 됩니다. 법의 취지와 목표와 달리 최저생계비 수준이 결정되고, 지속적으로 상대적 수준이 하락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최소한의 생활기준을 장바구니에 물건을 우겨넣듯이, 자의적이고 획일화된 잣대로 최저생계비를 확정짓는 현행 결정방식 때문입니다. 최저생계비의 낮은 기준은 사회복지의 수급 기준을 낮춰 수많은 가난한 이들을 사회보장의 무권리상태로 내모는 원인입니다.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누리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최저생계비 결정방식을 상대빈곤선 방식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기초법을 제대로 바꾸고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는 것은, 수급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빈곤의 기준선을 바꾸고 빈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인간다운 생활’의 기본선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