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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장

 

전세사기 특별법상 긴급복지지원제도 적용, 한계 또한 명백하다. 새로운 대책으로 침소봉대 하지말라.

 

국민의 위기를 방치하는 국가가 빈곤의 원인이다. 제대로 된 피해자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긴급복지지원제도 전세사기 피해자 적용의 의미

현행 긴급복지지원제도는 ‘위기사유’를 제한하고 있다(법제2조). 현재 정부는 위기 사유 중 하나로 전세사기 피해자 등을 추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긴급복지지원제도는 “생계곤란 등의 위기상황에 처하여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신속하게 지원함으로써 이들이 위기상황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하게 함을 목적”(법제1조)으로 한다. 그럼에도 위기 사유를 제한하고 있어 생활의 위기를 겪고 있더라도 법에서 정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한 제도를 이용할 수 없다는 사각지대를 낳아왔다. 어려움에 빠져있더라도 특정 위기사유에 해당해야만 지원받을 수 있다는 강퍅한 운영은 긴급복지지원제도의 대표적인 문제점이다.

현행 긴급복지지원제도는 까다로운 소득, 재산 기준으로 인해 빈곤층마저도 쉽게 이용할 수 없는 제도인데 이를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적용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유명무실할지 자명하다. 특히 금융재산 6백만원 이하와 같은 조항은 미래를 대비할 약간의 저축이나 적금의 존재 때문에 긴급복지지원조차 거절당하는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적금을 깨고, 저축을 모두 소진한 뒤에야 접근가능한 복지제도는 빈곤 문제를 더욱 심각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긴급복지지원제도의 한계와 전세사기 특별법의 한계를 고스란히 안고 가는 지원책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를 긴급복지지원제도 대상으로 포함하는 것이 중요한 정책적 대안인 것처럼 포장하지만 긴급복지지원제도의 사각지대는 이번 대책의 사각지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앞선다. 긴급복지지원제도는 까다로운 위기사유, 소득재산 기준이라는 문제 외에도 가구단위 신청 요건 등 복잡한 규정을 안고 있다. 일례로 교육, 양육을 사유로 다른 곳에 사는 30세 미만 미혼 자녀의 경우 부모님과 한 가구인 것으로 본다.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20대가 학교를 다니는 중이면 멀리 떨어진 부모님의 소득을 합쳐 지원여부를 결정할 것인가? 이 복잡한 규정이 낳는 빈틈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지원하는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더불어 이번 전세사기 특별법은 보증금 미반환으로 인한 피해를 폭넓게 수용하지 않는다. 긴급복지지원제도의 대상 역시 전세사기 피해자 및 이중계약, 신탁사기 등 명백한 사기이나 대항력을 갖추지 못한 자로 한정하고 있다. ‘명백한 사기’는 누가 입증할 수 있는가? 증거가 불충분하거나 단 피해임차인이 한 두명이라는 이유로 수사 개시조차 되지 않는 수많은 피해자들은 이 제도의 혜택에 포함되는가 안 되는가? 특별법의 한계 역시 고스란히 특별법상 긴급복지지원법으로 이식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대다수 피해자들의 상황과 여건에 맞지 않는 지원책

피해자들의 경우 현재 밀려드는 연체고지서, 원금과 이자 상환일과 씨름하며 둘, 셋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긴급복지지원법 신청을 위한 소득기준은 1인가구 155만원, 2인가구 259만원, 4인가구 405만원이다. 부채 해결을 위해 어떻게든 소득을 높여야 하는 피해자들의 대부분은 이 기준을 초과할 것이다. 경매 낙찰을 위해 남겨둔 최후의 비상금이 금융재산 기준을 초과할 수도 있다. 당장의 생계가 급박한데 이 때문에 긴급지원 대상도 되지 않는 문제와 같은 것을 해결할 방법에 대해서도 고려하고 있는가?

만약 이보다 소득이 적어 긴급복지지원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할지라도 긴급 생계비의 경우 1개월 이후 2개월 연장, 최대 6개월까지 가능하다. 현행 특별법은 피해자들의 피해보증금을 회복해주는 방안없이 저리대출 등만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재산과 소득이 미력한 피해자들의 경우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는 것을 제외하면 기대할만한 지원이 없다. 긴급 생계비를 지원받아 이를 대출 상환에 사용해야 한다면 그것이 과연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지원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결론: 피해에 걸맞는 대책이 시급하다

현행 긴급복지지원법의 한계 상 지원을 위해서는 ‘위기사유’를 추가하는 것 외에 별다른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특별법상 피해자로 인정을 받든 받지 않든 지원받을 수 있어야 옳다. 까다로운 특별법의 피해자 구분이 다시 긴급복지지원제도에서 반복된다면 이는 피해자들에게 두 번째 함정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긴급복지지원법을 통한 얄팍한 지원을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자를 위한 중요한 대책인 것처럼 침소봉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정부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했던 더 중요한 대책은 내버려둔 채 ‘긴급복지도 지원한다’는 식의 선전은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번 전세사기 특별법이 실제 벌어진 문제에 비례한 해결책이 빠진진 법안이라는 점에 깊은 아쉬움과 우려를 표한다. 국민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정부가 가장 힘써 발벗고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가 목도하는 빈곤문제의 주범은 정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집은 인간에게 보장되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평범한 세입자에게 보증금은 전재산이자 하루하루의 피땀이고, 미래를 그려나가는 주춧돌이다. 국민들의 피해를 이대로 방치말라. 우리는 더 심각한 빈곤과 불평등의 미래를 원하지 않는다.

 

2023년 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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