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OB베어가 쫓겨나면 모두가 쫓겨납니다! <을지OB베어 투쟁 선포 기자회견>

“을지로 노가리 골목을 가득 채운 건물주 만선호프는 탐욕을 멈추고, 을지OB베어와 상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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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OB베어 투쟁선언문]
1980년, 을지로 공구거리 한편에 자리를 잡은 여섯 평 남짓 작은 가게의 역사가 시작된다. 42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함없이 자리를 지켰다. 이웃가게 하나 둘 늘어나는 것 질투하나 없이 상생의 정신으로 골목을 일군 이 가게는 을지로노가리 골목의 원조 ‘을지OB베어’다. 그 공로와 역사가 인정되어 2018년 8월, 중소벤처기업부가 백년가게로 지정하였다. 우리는 아직 ‘백년가게’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도시의 생태계와 생존권을 고려하지 않은 막개발, 골목의 상권과 문화적 유산을 일군 소상공인의 계수되지 않는 노력을 존중하지 않은 결과로 맞닥뜨린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때문이다. 이 도시는 백년가게를 가지게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쫓겨남의 도시에서 을지OB베어와 같은 오랜 노포의 묵묵한 존재감이 빛나는 이유이다. 우리는 이 가게가 한 자리를 지키며 지금까지 장사할 수 있음으로 인해 정주할 수 있는 환경이 어떤 문화를 꽃피우게 되는지, 보이지 않는 곳의 묵묵한 노동이 도시의 유무형의 자산을 만들고 그것을 시민 모두가 누릴 수 있게 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뚝심 있는 한 가게와 그를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골목을 만든다. 재정을 쏟아 부어 억지로 조성하려 해도 만들어지지 않는 문화를 일군다. ‘을지로-노가리 골목’은 그렇게 모든 시민의 사랑을 받으며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시민들의 지지와 골목의 특수성이 인정받아 2017년, 중구청의 허가로 골목의 트레이드 마크인 야장영업을 허가 받았다. 독점의 골목이 아닌 상생의 골목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2014년, 인근 가게 만선호프를 인수한 방OO 대표는 골목의 작은 이웃 가게들 10개를 쫓아내며 문어발식 확장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2018년부터는 원조가게 을지OB베어의 건물주를 매수해 다섯 차례의 강제집행을 종용하였고, 결국 지난 2022년 1월 건물의 지분 62% 가량을 만선호프가 인수하며 건물주가 되었다. 만선호프 대표가 약속한 대화를 앞두고 있던 4월 21일 새벽 3시, 을지OB베어의 3대 사장과 연대인 2명이 잠을 자고 있는 가게에 만선호프가 고용한 용역 70여명이 들이닥친다. 여섯평 남짓 작은 가게를 집행하기 위해 70명이 야간에 동원되었으며 거꾸로 들려나와 아스팔트에 내동댕이쳐진 3대 사장은 실신 상태로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모이기까지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여섯 번째의 강제집행, 을지OB베어는 만선호프가 쫓아낸 11번째 이웃가게가 되었다.
이 골목은 ‘을지로 만선 골목’이 아니다! 이 골목은 오래된 한 가게를 시작으로 크고 작은 여러 가게들의 손 때 묻은 노동과, 공구거리의 단골들, 새로이 을지로를 찾은 모든 시민들의 발걸음이 함께 만든 공공의 골목이다. 이 골목의 원조가게 조차 현행법을 이유로 이렇게 허무하게 쫓아나야 한다면, 그 과정 중에 공공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무것도 없다며 손 놓고 있다면 서울시에 지킬 수 있는 가게는 하나도 없다. 만들 수 있는 문화도 하나도 없다. 보존할 수 있는 골목 또한 하나도 없다. 우리는 이 골목이 ‘을지OB베어의 골목’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우리는 단지 이 문화의 시작이자 일부로서 전통과 철학을 계승하고 발전시켜가며 손님을 맞이하고 싶다 말했을 뿐이다. 강제집행으로 우리를 쫓아내고, 간판을 떼고 그 자리에 만선호프 간판을 붙인다 한들, 그래서 이 골목에 11번째 만선호프 간판이 붙는다 한들 이곳은 ‘만선호프 골목’ 이 될 수 없다. 이곳은 우리와 이웃한 가게들이 터를 잡아 반세기 가까이 지켜온 우리 생활의 터전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백년가게를 일굴 것이며, 이웃과 더불어 백년골목을 이룰 것이다. 그리고 이 골목을 찾아 우리 가게의 맥주를 마시는 손님이 ‘한결같다’ 말할 수 있는 그런 가게를 일궈갈 것이다. 42년을 지켜온 가게는 앞으로 그만큼의 시간을 또 견뎌내 100년 가게가 될 것이고 오늘을 돌아보며 골목을 지켰노라 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끈질기게 상생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건물주 만선호프는 상생을 요구하는 우리의 목소리에 응답하라! 정치는 을지OB베어의 목소리에 응답하라! 을지OB베어가 쫓겨나면 모두가 쫓겨난다. 을지OB베어도 지키지 못하는 서울시는 어떤 소상공인도 지킬 수 없다. 우리는 이 골목에서 끝까지 투쟁하며 상생을 외칠 것이다. 목이 쉬어라 외치는 절박한 목소리는 쫓겨난 모든 가게와 쫓겨날 위기의 모든 가게와 함께 하는 목소리다. 건물주 만선호프는 을지OB베어와 상생하라!
우리는 요구한다.
1. 건물주 만선호프는 을지OB베어와 상생하라!
2. 서울시와 중구청은 서울미래유산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본래 가치 보존을 위해 을지OB베어 사태를 해결하라!
3. 중소벤처기업부는 백년가게 지정을 넘어 백년가게 보존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
2022년 5월 10일, 42년 동안 한결같이 문을 열었던 오후 1시
을지OB베어 공동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