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국토부는 주거취약계층 보증금 등 지원사업 중단 즉시 철회하라!

 

고시원에서 거주하고 있는 50대 A씨는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쪽방, 고시원 등지 거주자에게 임대주택을 지원하는 사업)에 선정되어 입주를 앞두고 있다. 염전 노예노동과 노숙인시설을 거쳐 고시원이라는 자신만의 방을 갖기까지 수십 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제 그는 ‘방’을 넘어 자신만의 ‘집’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모아 놓은 저축도, 세간살이도 없지만 2020년부터 시작된 국토부의 주거취약계층 보증금 등 지원사업(보증금 지원, 이사비 지원, 생필품비 지원)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채비는 결국 A씨의 몫이 돼 버렸다. 국토교통부가 예산 소진을 이유로 8월 3일부터 해당사업을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기금에 의존한 사업운영의 한계

 

정부(관계부처 합동)는 “아동 주거권 보장 등 주거지원 강화대책”(2019.10.24.)을 발표하며,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을 통해 공급되는 임대주택의 보증금(50만원)을 전액 지원하기로 하였다. 기존 주거급여, 생계급여 수급자에게만 적용하던 무보증금 제도를 모두에게 확대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더불어 이사비(20만원)와 생필품비(20만원)도 지원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재정은 국토부 예산이나 소관 기금이 아니라 서민주택금융재단 등(보증금), LH·감정원·HUG·주택관리공단 등(이사비, 생필품비)의 사회공헌기금을 통해 마련하기로 하였다. 국토부가 본 예산으로 편성한 것은 2020년도부터 시작된 ‘주거취약계층 주거상향 지원사업’으로 비주택 거주자의 공공임대주택 이주 수요 발굴과 이주과정 전반을 지원하는 사업에 국한된다. 이 사업은 ① 주거복지 프로그램 홍보, 방문상담, ② 공공임대주택 이주수요 발굴, ③ 임대주택 입주 및 정착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그 고유의 역할이 있지만 ‘보증금, 이사비, 생필품비’와 같은 필수 지출을 대체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결국 이와 같은 필수지출은 공공기관의 사회공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20년에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을 통해 공급된 임대주택은 총 5,502호이지만 보증금 지원 2,528명, 이사비 지원 862명, 생필품 지원 1,477명에 불과하다. 국토부가 담당한 것은  주거상향 지원사업에 선정된 지자체 및 LH이주지원센터 등 총 60개소에 각 1억원씩 지원하는 예산이 전부다. 국토부가 보증금, 이사비, 생필품 지원 같은 임대주택 입주에 필수적인 지출을 기금 고갈을 이유로 중단시켜 버리는 것은 무책임하다. 사회공헌 기금에 의존한 재원 조달 방식 자체를 개선했거나, 사후적으로나마 추경이나 소관 기금을 통해 부족분을 메웠어야 한다. 기금 고갈의 책임을 정책 대상인 주거취약계층에게 떠넘기는 것은 명백히 부당하다.

 

국토부의 책임성 강화 필요

 

국토부가 진행하고 있는 ‘주거취약계층 주거상향 지원사업’의 불안정성도 개선해야 할 과제다. 해당 사업은 시행 원년인 2020년 뿐 아니라, 2021년에도 지자체 공모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50개소의 LH이주지원센터, 공모를 통해 2021년 사업시행 선도 지자체로 선정된 12개의 지자체를 통해 사업을 진행한다. 전년도에 비해 사업시행 지자체가 1개 늘어난 수준이다. 서울의 경우 대표적인 주거취약계층인 쪽방 주민 밀집 지역인 영등포, 종로, 동대문구도 제외돼 있다. 위 언급한 ‘주거취약계층 주거상향 지원사업’의 항목들은 특정 지자체 거주자들에게만 필요한 지원일 수 없다. 집 답지 못한 집, 집 아닌 곳에 거주할 만큼 가난한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지원이다. 같은 필요에도 불구하고 특정 지자체에 거주한다고 지원대상에 포함되거나 제외되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부당하다. 따라서 해당 사업은 프로젝트 공모사업이라는 임의성을 버리고 일상 정규사업으로 제도화되어야 한다.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 업무처리지침」(국토부 훈령) 내에 ‘주거취약계층 주거상향 지원사업’의 항목들을 적시하여 전국적으로 예외 없이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보증금, 이사비 , 생필품비 지원도 명시하여 공공기관의 사회공헌 수준에 따라 가난한 이들의 주거권이 좌우되지 않아야 한다. 보증금·이사비·생필품비 지원 방식 또한 바뀌어야 한다. 쪽방에 살다 지난 4월 임대주택에 입주한 B씨는 주거복지재단을 통해 이사비용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그는 생필품 지원신청을 포기했다. 이사비를 받기 위해 영수증을 받고 확인서 등 제출서류를 준비하는 일도 혼자로는 버거웠는데, 대부분 중고시장에서 산 가전 등 생필품은 영수증 발급이 안 되거나 인정되지 않는 간이영수증만 발급됐기 때문이다. 이사비·생필품 지원이 입주자가 선지출한 후 청구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기에 생기는 문제인데, 몇 십 만원의 여윳돈이 없는 이들은 아예 선지출을 할 수조차 없다. 정책 대상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이와 같은 제도 운영은 취약계층에게 장벽이 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전세임대주택에 들어갈 경우 보증금마저 선지출하도록 해 접근성은 더욱 낮아진다. SH공사가 공급하는 임대주택에 입주할 경우, 해당사업을 통한 보증금·이사비·생필품비 지원은 아예 신청조차 할 수 없다.

 

쪽방에서, 고시원에서, 무방비의 거리에서 많은 삶들이 저물고 있다. 폭염 탓만 할 일이 아니다. 냉방, 난방, 방염, 위생, 방역 같은 기본 기능을 갖추지 못한 취약한 주거환경 자체가 초래한 죽음이다. 며칠 사이 국무총리와 서울시장과 제1야당 대선경선후보들이 앞다투어 쪽방촌을 찾았다. 무더위쉼터를 견학하고, 쪽방 골목에 소방용수를 살포하고, 생수와 레토르트식품을 나눠주며 폭염을 견디라고 한다. 그러나 열악한 주거가 가중하는 폭염의 고통을 주거상황의 개선 없이 해결할 수는 없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세수입은 전년 대비 50조원이 증가했다. 그렇다면 분명하다. 국토부가 보증금 등 지원사업을 지금 즉시 재개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재정 탓이 아니라 그들의 고의라고 볼 수 밖에 없다.